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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론> 열풍

전 세계적인 화제작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
3년 전 월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진 ‘점령하라’ 시위를 기억하는가? 2년 전 우리나라 선거판을 뒤덮은 경제민주화 담론을 기억하는가? 올 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소득불평등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핵심적 도전이라고 규정하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불평등 해소에 두겠다고 선언한 것을 아는가

최근 불평등은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다. 오랫동안 분배의 문제는 무시하거나 뒷전으로 제쳐놓고 효율과 성장에만 관심을 두던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점차 분배문제 연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다원주의를 신봉하던 정치학계에서도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계층이 정책결정에 압도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실증적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커진 까닭은 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소득불평등이 날로 악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 19세기 말 소위 ‘도금시대(Gilded Age)’의 수준을 재현하고 있다. 유럽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미국에서는 불평등 문제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불평등은 단순히 ‘배 아픈 문제’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자본주의와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해부한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21st Century)>을 내놓아 미국 사회와 전 세계 지성계를 강타하고 있다. 로버트 솔로우와 폴 크루그먼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수많은 학자가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온갖 매체에 서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1세기 자본론>은 아마도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 교과서 이래 경제학 전문서적으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책이 될 것 같다. 사뮤엘슨의 책은 케인즈 혁명을 미국과 전 세계의 주류경제학으로 우뚝 세우는 역할을 했고, 케인즈 이론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의 가이드북이 됐다. 이미 ‘피케티 시대’ ‘피케티 혁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과연 피케티의 책이 시대를 바꾸는 혁명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원래 불평등하다. 그런데 불평등이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분배가 불평등하더라도 사람들의 소득이 늘기만 하면 좋은 것 아닌가? 불평등하면서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평등하면서 정체된 것보다 낫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정책이 ‘배고픈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어야지 ‘배 아픈 문제’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편향된 주장이다.

절대적 빈곤이 만연한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절대빈곤을 넘어서면 상대적 빈곤의 문제, 즉 ‘배 아픈 문제’가 중요해진다. 행복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 심지어는 육체적 건강까지도 분배의 불평등 탓에 영향 받는다는 것이 수 많은 연구에서 입증됐다. 더구나 경제학이 추구하는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라는 사회적 목표는 소득의 한계효용이 낮은 부자들에게서 한계효용이 높은 저소득계층으로 소득을 재분배하고 분배를 평등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경제학자가 상당한 정도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케인즈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소비에 탕진하지 않고 대부분 저축과 투자에 사용하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자본 축적과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일한 근거에 입각해서 불평등이 심화되면 저축이 늘고 소비수요가 위축돼 수요부족에 의한 경기침체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주장도 제기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지나친 불평등은 성장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것이 최근의 정설로서 심지어 IMF도 최근 이러한 입장을 공식화했다. 불평등을 옹호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논리는 능력과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의 결과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은 정당하며, 이러한 불평등은 저축과 투자, 노력과 혁신을 고취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불평등을 옹호하는 위의 두 가지 논리를 궤멸시킨다. 첫째, 부자들의 저축은 경제성장을 낳기보다는 갈수록 더 심한 부의 집중(부익부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며, 이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이렇게 해서 불평등이 심화된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부자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유산을 많이 받은 자들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회를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부른다. 세습자본주의 아래에서 불평등은 단순히 ‘배 아픈 문제’가 아니라 능력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현대의 근본적 이념에 대한 원천적 부정이다.

먼저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장과 분배의 동학에 관한 피케티의 주장을 살펴보자. 피케티의 통찰은 자본에 대한 수익률(r)과 성장률(g)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데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r>g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단순한 부등식은 엄청난 함의를 지닌다. 이로 인해 자본-소득 비율(β)이 상승하고 전체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α)이 증가하게 된다. 큰 부자들은 소득의 작은 부분만 소비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저축을 통한 부의 증가율이 r에 근접하며, 소득의 증가율은 곧 성장율 g다.

따라서 r>g는 자본축적이 소득증가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β의 상승을 초래한다. 또한 α=rβ의 관계가 성립하므로 β의 상승에 비례하여 r이 떨어지지 않는 한 α가 증가한다. 그런데 보통 자본은 노동력에 비해 훨씬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소득에서 자본의 몫이 커진다는 것은 곧 소득불평등의 증대를 의미한다.

불평등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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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r>g는 불변의 법칙인가? <그림1>은 피케티가 각고의 노력으로 장기간의 통계를 추정해 작성한 것으로서 고대부터 2100년까지 자본의 세후 순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항상 r>g가 성립했고 오직 20세기에만 이 관계가 역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930년에서 1975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부의 대량 파괴와 자본과세의 획기적 강화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소위 황금시대의 높은 성장률이 합작해서 만든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과거에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처음에는 불평 등이 증가하다가 나중에는 하락한다는 사이먼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피케티는 황금시대의 대압착은 예외일 따름이며 불평등의 증가 경향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이라고 평가한다.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래에도 r>g가 지속될까? 피케티는 21세기에는 20세기와 같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인구증가율 하락이 큰 요인이며, 기술 발전의 속도도 과거에 비해 저하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자본 축적이 지속되면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에 의한 성장률 하락도 작용할 것이다. 이 부분은 별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r의 하락 여부다. 소득에 비해 자본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성장률이 하락한다면 자본의 수익률도 하락하지 않을까? 피케티는 이와 관련해서 자본과 노동의 대체탄력성(σ)이 1보다 높아서 자본수익률은 별로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노동 대신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여지가 워낙 많아서 자본의 증가에도 임금상승에는 한계가 있고 자본의 수익률은 어는 정도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80년대 이후 실질이자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의미다. 자금시장에서의 이자율과 자본의 수익률은 물론 다르다. 그러나 이 차이가 한없이 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지난 30년 간 이 차이를 확대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산업집중도가 높아지고 노동자의 교섭력이 하락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딘 베이커도 현재 자본의 수익 중 많은 부분이 정부의 특혜성 정책에 의한 독점 이윤으로서 향후에 이런 정부 정책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조합의 강화 등으로 노동의 교섭력이 강화되면 임금 몫이 증가하고 자본소득 몫이 하락할 수도 있다. 크루그먼은 규제 완화의 영향을 간과한 것을 비판한다.

피케티의 분석은 소득불평등 증가의 원인에 관한 논의를 일거에 뒤집어버렸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1980년대 이후 나타나는 불평등 증가의 원인으로 노동절약적인 기술 발전이나 세계화에 따른 개도국 저임금 노동과의 경쟁 등이 주로 언급됐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고학력-고숙련 노동과 저학력-저숙련 노동 사이의 임금격차 확대에 관한 것이며,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분배에 관한 것은 아니다. 피케티는 감히 마르크스의 냄새를 풍기며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는 바로 자본에 있다는 명제를 내세우고 있다.

강력한 자본과세로 세습자본주의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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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사실 피케티가 에마누엘 사에즈와 앤소니 앳킨슨 등과 함께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소득분배의 실상에 관한 실증연구를 한 결과 가능해진 것이다. 흔히 지니계수와 같은 단일한 척도로 불평등을 측정해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만 확인한 후 그 원인을 분석하려고 했는데, 이들은 전체 소득에서 최상위 10%, 1%, 0.1%가 가져가는 몫을 추정해 불평등 증가의 대부분이 극소수 최상위 계층으로 소득이 집중돼 초래된 것임을 밝혔다.

<그림3>은 미국·영국 등 앵글로색슨계 국가들과 일부 신흥시장 국가들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을 그린 것이다. 두 그룹 모두 황금시대의 대압착과 1980년대 이후의 불평등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최상위 1% 혹은 0.1%가 차지하는 몫은 ‘도금시대’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기술발전이나 세계화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의 불평등 증가가 r>g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그 결과는 19세기 유럽이나 미국의 도금시대와 같은 세습자본주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습자본주의는 부와 특권을 상속으로 누리는 사회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에서 보트랭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직업적으로 성공해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사회다. 능력주의가 근본적으로 부정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위협받는 사회다.

그런데 여기서 피케티의 이론에 한 가지 난점이 등장한다. 소득불평등이 가장 극심하게 진전된 미국의 상황을 보면 과거의 세습자본주의 시대와 맞먹는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고소득자들이 단순한 상속자들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최상위 1%의 소득 중 40%만이 재산소득이다. 이는 최상위 임금소득이 엄청나게 증가한 결과다. 이들은 대부분 피케티가 ‘수퍼매니저’라고 부르는 대기업과 금융회사 경영진들이다.

피케티는 이들의 임금 폭증의 원인을 부자 감세를 비롯한 사회적 규범의 변화에서 찾는다. 솔로우는 이들의 연봉 중 상당 부분은 임금소득이라기보다는 자본소득의 변형된 형태가 아닐까 추측한다. 어쨌든 이러한 최상위 임금 폭증에도 자본소득 몫의 증가가 전체 불평등도 증가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으며, 오늘의 부가 내일의 후손에게 상속이 되면서 갈수록 세습자본주의의 성격이 짙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미 0.1% 계층의 소득은 70%가 재산소득이다.

세습자본주의의 도래는 불가피한 것인가? 피케티는 강력한 자본과세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00만 유로가 넘는 재산에 대해서 1%, 500만 유로가 넘는 재산에 대해서는 2%의 부유세를 주창한다. 이를 통해 자본의 세후 수익률과 성장률 사이의 차이를 메우면 불평등 악화의 엔진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의 이동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과세는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유럽연합이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에서 먼저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피케티는 최고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를 병행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러한 정도의 과세가 성장에는 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두 가지다.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을 볼 때 이런 정도의 자본과세가 조만간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앞서서 지적한 것처럼 세전 자본수익률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제도적 환경에 의해 상당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처럼 과세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과 제도 면에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필자가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라고 누차 주장한 것처럼 최종 결론은 정치다. 피케티도 황금시대가 종언을 고하고서 불평등이 악화한 것은 정치적 변화, 즉 신자유주의 정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평등의 심화를 막고 세습자본주의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치를 다시 바꿔야 한다. 피케티는 프랑스의 전통을 따라 ‘사회국가(social state)’를 얘기한다. 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정치변화의 중심축이 돼야 할 것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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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