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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식 밥상머리교육? … 가르치지 말고 소통하라

20일 오후 2시 서울 상도초등학교 과학실. 당근과 양상추, 밥과 참기름이 놓인 테이블마다 3학년 학생과 학부모 30명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둘러앉았다. 교육부와 사회적 기업 푸드포체인지(food for change)가 주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꿈꾸는 목요일 - 가족 식사 대화법
미리 신문 읽고 토론하기 등 딱딱한 훈육 방식 되레 부담
성적·숙제 같은 잔소리는 금물 … 재미있고 일상적인 대화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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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듀케이터’(food+educator)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강사 임다혜씨가 “어제 저녁식사 때 가족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 나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식사 장면을 그려보라고 하자 학부모 부경애(37·여)씨는 아이가 컴퓨터를 바라보며 밥 먹는 모습을 그렸다. 이날 엄마와 자녀가 함께하는 요리 메뉴는 당근 주먹밥과 양상추 샐러드. 테이블마다 뚝딱뚝딱 칼질이 시작됐다. 당근을 썰고, 양상추를 찢고, 참기름을 바르고, 샐러드를 만들고…. 아이들은 연신 “엄마와 처음으로 함께 요리해 보니 너무 재밌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씨는 엄마들에게 식사 예절과 대화법을 들려주며 “밥 먹는 시간만큼은 공부 얘기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부모 박용숙(42·여)씨는 “‘숙제는 다 했느냐’ ‘빨리 먹고 학원 가라’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뜨끔했다”며 “앞으로는 식사 시간만큼이라도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오예찬(9)군은 엄마에게 “앞으로는 밥 먹을 때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안 할게요”라고 말했다.



 실종된 ‘밥상머리 교육’의 전통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인성교육은 물론 학업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가 풀무원식품과 손잡고 학교폭력 예방 대책 차원에서 도입한 밥상머리 교육 프로그램은 2012년 도입 당시 2개 학교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35개, 올해 70개 학교로 늘어났다. 교육부 오순문 학부모지원팀장은 “우리 학교에서도 밥상머리 교육을 시켜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많다” 고 말했다.



 한국에선 ‘식시오관(食時五觀: 식사할 때 지켜야 할 5가지)’으로 대표되는 밥상머리 교육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노력을 헤아리고, 음식을 탐하지 말고, 도를 닦은 뒤 먹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조선 중기 대표적 명문가인 류성룡가(家)의 교육관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식사 예절을 지킨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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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최근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기회가 드물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초4~고3 학생 6410명을 설문한 결과 부모와 주 3~4회 식사한 비율이 59%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78%)보다 크게 떨어진다. 학부모 장모(42·여)씨는 “평일엔 아빠와 아이가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없다”며 “엄마가 있더라도 음식을 차려놓고 아이 혼자 먹거나 함께 먹을 땐 서로 말없이 TV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푸드포체인지 김서윤 팀장은 “평소 스마트폰을 못 만지게 하는 대신 밥 먹을 때라도 만질 수 있게 해주는 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는 각종 연구 결과로 입증된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만 3세 유아가 독서를 통해 140개 단어를 익힌 반면, 가족 식사를 통해선 1000개를 익힌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식사를 자주 한 학생의 A~B 학점 비율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는 컬럼비아대 연구 결과도 있다.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네소타대 연구에 따르면 가족 식사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폭식이나 과도한 다이어트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민혜선(한국영양학회장) 한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가족 식사를 많이 할수록 칼슘·섬유소가 풍부한 음식 등 성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를 더 많이 섭취하고 탄산음료나 설탕이 든 인스턴트 음식은 적게 먹는다”며 “부모와 대화를 하며 천천히 다양한 반찬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을 미리 읽고 와 식사하며 토론한다’는 내용의 케네디가(家)식 과거 밥상머리 교육은 ‘현대판’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가족 식사가 훈육의 연장선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현아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센터 교수는 “정해진 시간에 가족이 다 모이기 어렵고 아이들이 지나칠 만큼 숙제에 억눌려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가족 식사가 자녀에게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장인자 학부모지원팀 장학관은 “식사를 소통의 도구로 삼아야지 과거처럼 식사 자리를 통해 뭔가를 이루겠다는 식으로 강박관념을 가져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식사 중 숙제나 성적, 학원을 화제로 올리기보다 서로의 일상에 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식으로 자녀와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즘 친구들과 쉬는 시간엔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 ‘인터넷에서 자주 들르는 사이트는 뭐냐’고 묻는 식이다. ‘예’ ‘아니오’식 답을 요구하기보다 생각을 묻는 ‘개방형 질문’을 던지란 얘기다. 서울대 이 교수는 “부모가 식사 시간만큼이라도 잔소리를 하지 않고 대화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기 어려운 아빠의 경우엔 아침식사를 함께하는 것도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아빠는 늦게 퇴근하더라도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한다든지 주말이라도 최대한 가족 식사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오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족 식사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직장에서 일찍 퇴근하는 것”이라며 “일 중심 문화를 가정 중심 문화로 바꾸려면 정부·기업부터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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