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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군 통수권 … 군부, 왕실 묵인 하에 쿠데타 18번

20일 계엄 기자회견을 하는 쁘라윳 짠오차 육참총장(가운데)과 각 군 및 경찰 최고사령관들. [중앙포토, 로이터=뉴스1]

푸미폰 아둔야뎃(87) 태국 국왕은 국민적 존경과 충성의 대상이다. 총명과 청렴을 겸비했고, 왕실 경비를 들여 서민 생활 개선에 나설 정도로 재위 68년간 성군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푸미폰 국왕과 ‘함께 가는’ 존재가 태국군이다. 군이 20일(현지시간)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국내 정치를 순식간에 장악할 수 있는 배경에 왕이 있다. 태국의 군 통수권자는 총리가 아닌 국왕이다.

 태국군은 왕실과 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852년 창설된 후 절대왕정 기간 동안 장교의 87%가 왕족과 귀족으로 충원됐다. 1932년 입헌군주제로의 무혈 쿠데타를 일으킨 이도 장교들이었다. 이후 군 출신이 총리가 되고 다시 장교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전복시키는 군부정치의 역사가 92년까지 되풀이됐다. 그 기간 대부분을 푸미폰 국왕이 왕좌에 있었다. 그는 군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권위를 지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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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민주화 이후로도 왕자·공주들은 장군 계급을 갖고 있고, 북한처럼 군복 차림으로 행사에 참가하기도 한다. 군부의 파워도 여전하다. 지상파 TV 방송사(채널5)의 최대주주이고, 여러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군의 유용한 선전 도구다. 은행도 소유하고 있다. 군 고위직 인사는 군부 내에서 자체 결정한다. 90년대 말 태국군 장성이 26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태국군은 2006년 입헌군주제 아래서 18번째 쿠데타를 일으켰다. 친서민 정책으로 왕실 및 군부 등 기득권층과 갈등을 빚어온 탁신 친나왓 총리를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당시 왕의 복심으로 불리던 쁘렘 띤술라논 전 총리는 군을 말에 비유해 “기수(騎手·총리)는 바뀌지만 마주(馬主·왕)는 영원하다”며 군이 국왕 편에서 행동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때 군은 적잖은 체면 손상을 겪어야 했다. 쿠데타 이듬해 총선에서 탁신의 정당이 다시 승리했고, 2011년 또다시 집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시작된 잉락(탁신의 여동생) 총리 반대 시위와 지난 7일 헌법재판소의 잉락 총리직 해임 판결로 이어진 현 사태에서 군이 신중했던 이유도 이런 전례 때문이다.

 그러나 계엄령까지 오게 된 상황을 보면 군이 과거처럼 일시적 군사행동이 아닌 ‘조용한 쿠데타’를 진행해온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잉락 총리가 시위 진압을 요청해도 군은 위생병을 파견해 시민들을 돌보는 데 그쳤다. 정부의 편에 서야 함에도 중립을 밝히며 정부와 야권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군부 실세이자 현 계엄사령관인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은 모호한 발언으로 여론을 저울질했다. “쿠데타 가능성은 상황에 달렸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무력 개입은 없다” “현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 양측 다 룰을 지켜라”라는 논평을 반복했다. 총리 해임 결정 후 사태가 험악해진 15일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며 쿠데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기득권을 대표하는 상원과 현 과도총리의 만남이 결렬되자 다음날 계엄을 선포했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향후 군부가 경색된 국면을 누그러뜨린 후 중재자로 나서거나 정당성 비난을 감수한 채 과도총리를 갈아치우고 총리 임명제를 몰아붙이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선 두 행보가 겹쳐 나타나고 있다. 쁘라윳 총장은 “7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유혈사태 우려가 제기된다면 선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선거를 하면 패배가 유력한 반정부 측 입장이다. 한편으론 쁘라윳이 이날 정부와 야권 대표단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양측은 22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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