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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고백 "사람은 끝없이 변해" 불교·기독교 가르침과 통하더라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트랜센던스’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 소재다. 인공지능 연구 권위자가 테러를 당해 사망 직전에 이르자 두뇌 안의 모든 정보를 수퍼 컴퓨터로 옮긴다. 차가운 컴퓨터 안에서 ‘마음’으로만 존재하려는 업로딩이다. 이런 상상력이 실현가능해진다면 업로딩은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까. 컴퓨터 속 ‘나’는 변함없이 업로딩 이전의 나인 것일까.


승현준 미국 MIT 교수(左), 서명원 서강대 교수(右)

뇌과학 전문가인 미국 MIT대 승현준(47)교수와 프랑스 출신 가톨릭 신부인 서명원(61)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함께 만났다. 영생·영성·정체성 등 과학 발전으로 인해 위협받는 ‘인간의 고유 영역’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승 교수의 연구 분야인 ‘커넥터믹스(connectomics)’는 인간 두뇌의 완전정복을 꿈꾼다는 점에서 업로딩과 유사하다.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의 연결 전체를 일컫는 커넥텀을 3D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인간의 ‘뇌 지도’를 그려내는 시도다. 서 교수는 뇌과학계의 커넥텀 이론이 불교나 기독교와 통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 SF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두뇌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서명원=나는 의대를 6년 동안 다녔다. 하지만 그만 뒀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의학이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승 교수가 연구하는 뇌과학에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 뇌세포 사이의 연결 상태 변화가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 형성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그 뇌 변화의 메커니즘을 정복하면 자폐증 등 각종 뇌질환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기술의 발전이 아직 충분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승현준=커넥터믹스는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인 방대한 책과 같다. 글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뜻을 풀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 연구는 결국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영생이나 죽음의 문제 말이다. 그래서 지난달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내 책 『커넥톰』(김영사)에서 그런 문제들을 언급했다.

 - 마인드 업로딩은 죽음을 뛰어넘어 영생을 얻는 길이 될까.

▶승=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천국에서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고, 따라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는 그런 천국 개념이 없다. 지금 속해 있는 물리적인 세계가 유일한 세계다. 업로딩 이후 컴퓨터 속의 삶은, 만약에 실현 가능해진다면, 새로운 개념의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기독교의 천국이나 불교의 열반에 의지할 수 없는 이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천국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서=나는 대승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주말마다 불교 명상 공동체를 지도한다. 대승불교는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본다.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고 열반에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기독교 신앙에 비춰보면 교회 다닌다고 모두 천국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갈 운명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는 얘기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의 질문에 답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과학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지 생각해봐야 한다.

 - 뇌과학자로서 영성을 어떻게 보나.

▶승=신을 직접 체험한 적은 없지만 영적인 느낌을 받은 적은 있다.

 - 그런 영적인 느낌 역시 커넥텀이 작용한 결과인가.

▶승=누구나 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어떤 것의 일부분이라고 느끼지 않나. 도덕적인 감각, 이타주의도 영적인 부분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 두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본다.

 - 뇌과학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승=그에 대한 나의 독창적인 답은 없다. 책에서는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의 사고 패턴이라는 이론을 인용했다. 그 패턴의 정보 역시 커넥텀에 저장된다고 본다.

- 종교적 입장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보나.

▶서=불교에서는 ‘지금 여기 있는 게 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있는 당신은 당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승=불교의 그런 논의는 다른 어딘가에 진정한 자아가 있다는 것인가.

▶서=석가세존은 진정한 자아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의 절대적인 발언을 거부했다. 커넥텀 개념은 우리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런 점이 석가세존이 2500년 전에 하신 말씀과 통하는 면이 다.

▶승=열반에 이른다고 해도 사람의 의식은 남아있는 것 아닌가.

 ▶서=불교에서 의식이 반드시 자아에 연결될 필요는 없다. 불교는 ‘나’라고 하는 인식이 없는 순수한 의식 상태를 강조한다.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은 신과의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천국에 가 영생을 누리는 것도 예수와의 관계를 통해서다.

▶승=가톨릭 신부이면서 불교에 관심이 큰 이유가 궁금하다.

▶서=불교를 알게 된 후 내 신앙은 굉장히 유연해졌다. 당신 식으로 말하면 불교를 만나 내 커넥텀은 변화했다. 커넥텀 이론은 내가 알고 있는 불교 사상이나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강화한다. 나는 평생 살면서 생성한 내 커넥텀에 상응하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 그 흔적을 느낀다. 불교에서 카르마 혹은 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른다.

▶승=내 책이 그렇게 읽히다니 기쁘다. 나는 뇌과학 연구에 푹 빠져 있다. 하지만 연구는 쉽지 않다. 신학과 관련된 좀 더 복잡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큼 연구의 진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 진지한 생각을 하는 자리였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승현준=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인간 두뇌 연구에 끌려 방향전환을 했다. 사람의 신경 세포 전체의 지도를 그리려는 커넥터믹스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2010년 커넥텀에 관한 TED 강연이 75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서명원=가톨릭 예수회 소속 신부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 불교 공부로 이어져 2004년 파리 7대학에서 성철(性澈) 스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부터 경기도 여주에서 종파를 초월한 참선 수행 공동체를 이끌며 유기농 농사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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