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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도둑맞은 세대' 위한 호주 내셔널 소리 데이

호주는 1901년부터 73년까지 모든 유색인들의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白濠主義·WAP)를 유지했다. 골드러시 이후 값싼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백인들의 임금이 저하하자 이런 인종차별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가 부각되면서 위정자들은 애버리지니, 즉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아들을 노동력으로 전환하기로 한다. 그러나 유색인인 원주민의 피가 흐르는 혼혈아들을 일단은 백인화시킬 필요가 생기자, 참으로 무자비하고 반인륜적인 국가범죄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졌다. 즉 혼혈아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다가 백인가정이나 국가보육시설에 입양시켜 백인으로 ‘사육’한 것이다. 이처럼 양육된 아이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라 부르는데, 이들은 성인이 되어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높은 자살률까지 보인다. 이러한 국가범죄가 1900년께부터 70년 가까이 계속되었고 점차 호주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97년 호주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그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라’는 보고서는 전 호주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사과와 보상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호주는 이듬해인 98년부터 매년 5월 26일을 ‘국가 유감의 날(National Sorry Day)’이라는 비공식 기념일로 정하고, 도둑맞은 세대에 대해 범국민적으로 국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쟁점으로 떠올라 드디어 2007년 호주 총선의 최대 이슈가 되었다. 집권 보수여당의 존 하워드 총리는 끝내 사과를 거부했고, 야당 당수인 케빈 러드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즉시 사과를 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러드 총리는 취임 다음날인 2008년 2월 13일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의회와 정부를 대표하여 애버리지니와 도둑맞은 세대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우리는 인류역사에 가장 오래 존재하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존경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저지른 잘못을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국민 역사에 어두운 장이었던 잃어버린 세대에 대해 사죄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사과는 호주의 어두운 역사에 큰 획을 긋고 있다. 비록 아직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는 해도 새로운 미래는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청산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며 보상할 것은 보상하는 등 진실된 말과 실천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또 하나의 산 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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