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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해도 해도 너무한 해군 성추행 사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은 미국 해병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한 작품이다. 해병대의 명예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진상을 숨기려는 나단 제셉(잭 니컬슨) 대령과 이를 파헤치는 군법무관 대니얼 캐피(톰 크루즈) 중위의 공방을 다뤘다.

 20여 년 전 봤던 이 영화가 요즘 다시 생각난 건 ‘까도 까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 해군 때문이다.

 3월 말 해군 1함대 초계함에서 여군 소위를 상급자가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5월 초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해군은 A대위가 여 소위를 “지나가다가 가볍게 터치했는데 성추행으로 간주돼 구속 수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대위뿐이 아니었다. B소령도 같은 여군 소위에게 지속적인 성적 폭언을 해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본지 5월 20일자 A15면> 은폐 의혹이 불거지자 해군은 그제야 해명하고 사과했다. 문제의 B소령을 3개월 감봉 조치하고 타 부서로 전출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문이다. 왜 단기간에 같은 여군 소위를 상대로 성군기 사고가 반복됐을까. 그것도 국방부 장관이 성군기에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을 때에 말이다.

 의문은 이날 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풀렸다. 해군 관계자였다.

 이에 따르면 B소령은 지난해에도 초급 장교들 앞에서 “늙은 여자가 술집에 있으면 술맛 떨어진다” “남자 장교들끼리 2차로 좋은 곳에 가자”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보다 못 한 일부 초급장교가 함대 상급자에게 보고했으나 상급자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당시 조치를 했으면 여군 소위의 사고가 있었을까. 뒤늦게 헌병대의 조사가 시작되자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언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A대위의 성추행도 해군이 밝힌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20일 해군은 A대위의 성추행 정도를 ‘가벼운 터치’에서 ‘어깨를 만진 것’으로 정정했지만 실제로는 A대위가 숙소에 몰래 들어와 누워 있는 여 소위를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국방부를 출입하며 현장에서 만난 초급 장교들은 패기가 넘쳤다. 한겨울 외풍을 막지 못하는 30년 된 관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들이 조직의 치부를 한밤중에 외부에 토로할 수밖에 없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봤다. 나라를 지키는 숭고한 임무를 맡고 있는 그들이 왜 성추행이니 성희롱이니 하는 문제에 얽혀 숨죽이고 마음고생을 해야 할까. 누가 이들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장관이 위에서 아무리 무관용 원칙을 외쳐도 소용이 없는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통용되는 은폐와 묵인, ‘관용의 원칙’이 범인이었다.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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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