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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공직 부패와 국가의 무게중심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지난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만난 젊은 워킹맘 T. 그는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따로 있다. 공무원이다. 월급은 민간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보다 적지만 그건 명목상 임금일 뿐이다. 실수입은 아무도 모른다. 본인 하기 나름이다. 직업적 안정성은 보너스다.



 -시험 쳐서 합격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죠.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 그럼 또 뭐가 필요하지요?



 “연줄이 있어야 하고, 또….”



 베트남에서 공무원이 되려면 우선 중요한 게 인맥이다. 시쳇말로 ‘빽’이다. 돈도 필요하다. 적당히 ‘기름칠’을 해야 한다.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에게 공무원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하노이 특파원을 지낸 김선한 기자의 증언.



 “베트남의 공무원 채용 방식은 공개 전형이 아니라 철저한 면접 중심이다. 채용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수시로 뽑는다. 그만큼 정실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는 의미다. 공산당 간부나 중앙부처 간부로 일하는 친인척이 있을 경우 응시자의 합격은 떼어놓은 당상이다.”(『베트남 리포트』, 철밥통을 대물림하는 공직사회)



 그렇다 보니 베트남 중앙부처에서는 국장은 외삼촌, 과장은 조카, 하급직은 친가나 외가 쪽 피붙이가 나눠 맡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 다. 인허가권을 가진 끗발 있는 부처 공무원들은 가만히 앉아서도 거액의 뒷돈을 챙기고, 때로는 친인척 명의로 이권에 개입해 천문학적 축재를 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공직은 꿈의 직장, 신도 부러워할 직장이다.



 베트남 공직 사회의 부패는 위 아래 구분이 없다. 말단 창구직원은 급행료를 챙긴다. 우리 돈으로 몇 만원의 현찰을 끼워 넣지 않으면 서류가 돌아가지 않는다.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면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 돈으로 3만원이 기본이다. 고위 공직자를 행사에 초대하려면 초청장 봉투에 현찰을 동봉해야 한다. 직위가 올라가면 액수도 커진다. ‘왕림’해주시면 고맙다고 또 현금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 명절 선물은 최소한의 예의다. 현지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한국 기업인이 얼마 전 베트남 최고위층 인사에게 “좋은 일에 쓰시라”며 현금 1000만 달러(약 102억원)를 쾌척했다는 ‘미담’이 도시의 전설처럼 하노이에 회자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베트남은 지난해 100점 만점에 31점으로, 조사대상국 177개국 중 116위를 기록했다. 청정국가 공동 1위는 덴마크와 뉴질랜드(91점)였다. 한국은 55점으로 46위였다. 그만하면 깨끗하지 않으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베트남처럼 내놓고 하는 노골적인 부패는 덜할지 몰라도 눈에 잘 안 보이는 교묘하고 지능적인 부패가 많다. ‘관피아’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대민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은 온갖 규제 장치로 자기 밥그릇을 챙긴다. 중앙부처 공무원을 하다가 낙하산을 타고 공기업으로 내려가는 일은 다반사다. 주요 공기업 임원 3명 중 1명이 공무원 출신이다. 산하 단체로 옮겨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아예 사기업으로 배를 갈아 타는 경우도 많다. 장관이나 대사를 지내고 대기업 고문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직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와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는 한국 대기업의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나란히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수의 선택 받은 무리를 중심으로 끼리끼리 어울려 돌아가는 사회는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사회다. 과적을 하고 평형수를 빼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간 세월호처럼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복원력을 잃고 전복되거나 침몰하기 쉽다. 돈과 권력, 인맥과 특혜로 얽힌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된 대다수의 약자를 배려하는 쪽으로 사회의 무게중심을 끌어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해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는 것은 최선의 국가안보다.



 월남은 분열과 부패로 망했다. 그 실수를 통일된 베트남이 되풀이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중국과 베트남의 부패와 불평등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는 것은 21세기의 패러독스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관피아 척결 방안을 제시했다. 300명이 넘는 아까운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나서야 뒤늦게 외양간 고치기에 나선 꼴이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공무원은 주인인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명예로운 직업이다. 부(富)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다. 명예로 족하다. 공직 바로 세우기는 사회의 무게중심을 아래로 옮기는 첫걸음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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