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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37> 원내대표의 모든 것

천권필 기자
원내대표의 모든 것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아시나요? 주인공인 프랭크 언더우드는 미 하원 다수당 원내총무로 활약합니다. 여당 원내대표인 셈인데요. 미국에선 원내총무를 ‘Whip’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사냥개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 하는 사람인 ‘Whipper-in’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당내 의원들을 통솔하는 원내대표의 역할도 비슷 합니다. 원내대표의 A부터 Z까지 알아보겠습니다.



YS 5번 맡아 최다 기록 … 의원 모두 선망하는 '야전사령관'

천권필 기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8일 나란히 새 원내대표를 뽑았다. 새누리당은 충남지사 출신의 이완구 의원(3선·충남 부여-청양)이, 새정치연합은 박영선(3선·서울 구로을)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원내대표란 국회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을 말한다. 현행 국회법에 따라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는데, 이 교섭단체의 대표의원이 바로 원내대표다. 과거에는 원내총무로 불렸고, 야전사령관 혹은 원내사령탑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어하는 선망의 자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8세의 나이에 제1야당인 민정당(民政黨)과 제2야당인 민주당(民主黨)이 통합해 창당한 민중당의 원내총무가 된 이후 원내총무직을 무려 다섯 번이나 맡아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로 지명됐지만, 당시 김영삼 의원이 견제해 의원들의 인준을 받지 못했다.



1998년 8월 10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주선한 3당 원내총무회담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신임 원내총무가 한화갑 국민회의·구천서 자민련 원내총무와 손을 맞잡고 있다(왼쪽부터 박희태·박준규·한화갑·구천서). 이 날 박희태 원내총무는 “한 총무는 이름 그대로 화(和)에는 갑(甲)이라고 생각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국회를 운영하자”고 말했고, 한화갑 원내총무도 “앞으로 국회를 멋지게 운영해보자”고 화답했다. [중앙포토]


◆사무총장 아래에서 당 대표급으로



 원내대표는 원래 국회 초기부터 원내총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다. 사무총장·정책위의장과 함께 당3역으로 꼽혔지만, 당내 서열은 사무총장보다 낮았다. 그러다가 2003년 민주당으로부터 분당한 열린우리당이 원내정당을 표방하며 원내총무 대신 원내대표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열린우리당 초대 원내대표에 선출된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원내대표라는 이름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어 다른 정당들도 원내대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당 총재가 일방적으로 임명한 원내총무와 달리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했다. 원내정당화 추세에 따라 원내대표의 권한도 과거 원내총무 시절보다 더욱 강화됐다. 당내 서열도 사무총장을 뛰어넘었고, 당 대표와 함께 투톱 체제를 형성했다. 당 대표가 지도부를 이끌며 정무적인 역할에 집중했다면,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의 권한을 위임받아 정책결정 등 실질적인 당내 운영에 주력하게 됐다.



◆당 대표보다 더 많은 예산 주물러



 원내대표는 실질적으로 당 대표에 이어 서열 2위로 꼽히지만, 권한과 책임은 당 대표 못지않다. 우선 소속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조정하고 지원한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상임위원회를 배분하는 일도 원내대표의 몫이다. 원내대표는 당연직으로 국회 운영위와 정보위의 위원이 되며,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까지 맡는다. 국회직인 만큼 각종 수당과 경비도 지원돼 실질적으로 당 대표보다 더 많은 예산을 주무른다. 한 여당 원내대표는 각종 행사 등에 돈을 실컷 썼는데도 결국 임기 안에 판공비를 다 쓰지 못해 남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내대표는 원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의원총회의 의장이기 때문에 직접 의총을 소집하고 정책결정 등에 관한 당론을 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원내대표를 거쳐 당 대표로 직행한 경우도 많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0년 두 번째 원내대표 임기를 마치고, 두 달 뒤 전당대회에 출마해 대표최고위원에 뽑혔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황우여 현 새누리당 대표도 원내대표 경력을 발판으로 삼아 대표 자리를 차지했다. 김한길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역시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경험이 있다.



◆원내대표 선거 어떻게 치러지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선출된 날로부터 1년이다. 원내대표 선거는 의원총회에서 실시한다. 당내 국회의원들이 직접 투표해 뽑는다. 재적의원 과반수가 투표해 과반수의 표를 얻으면 원내대표에 선출된다. 만약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1·2위가 결선투표에 들어가 승패를 가른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순위가 뒤바뀐 경우도 있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2012년 원내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58표를 얻어 이한구 의원(57표)에 한 표 차로 앞섰지만, 2차 투표에선 이 의원이 72표로 66표에 그친 남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특히 새누리당은 원내대표 후보가 정책위의장 후보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출마하기 때문에 어떤 조합을 짜는지가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새누리 ‘수도권+영남’, 민주 ‘수도권+호남’



 새누리당은 현재까지 총 11명의 원내대표를 배출했다. 민주자유당 시절인 14대 국회(1992년)부터 따지면 원내총무까지 총 25명에 이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같은 기간 21명의 원내대표(총무)가 나왔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영남’, 새정치연합은 ‘수도권+호남’이 원내대표(총무) 자리를 나눠 맡다시피했다.



 구체적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서청원(동작)·이재오(은평) 의원 등 서울에 지역구를 둔 원내대표(총무)가 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경기가 4명, 대구·경북이 각각 3명으로 뒤를 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7명의 원내대표(총무)를 배출한 서울이 가장 많았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구로)와 전병헌 현 원내대표(동작)가 대표적이다. 전북은 정세균(진안-무주-장수-임실) 의원, 정균환(고창-부안) 전 의원 등 5명이 원내대표(총무)를 맡았다. 이색 경력을 지닌 원내대표들도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1960년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부친(김용주 전 의원)에 이어 2010년 원내대표를 맡았다. 부자(父子)가 모두 원내대표(총무)를 역임한 셈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충청과 강원, 제주 출신의 원내대표(총무)는 1996년 민자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현경대 전 의원(제주)과 이완구 현 원내대표가 있다. 홍사덕 전 의원은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서는 예외적으로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재선에서 5선까지…평균 선수는?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들을 통솔하는 자리인 만큼 국회의원으로 몇 번 당선됐느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현재까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평균 선수는 3.2선이다. 국회의원에 적어도 세 번은 당선돼야 원내대표 자리를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이 3.7선으로 2.8선의 새정치민주연합보다 평균 선수가 더 높았다. 최다선은 5선에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강재섭 전 의원이다. 반면 재선이라는 비교적 짧은 경력에도 원내대표를 맡은 경우가 있다. 18대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재선 의원이었던 박지원·김진표 의원이 연이어 원내대표를 맡았다.



◆때론 맞수로, 때론 소통의 창구로



 여야는 대결과 투쟁의 역사를 반복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원내대표가 있었다. 여당 원내대표가 여권의 방침을 밀어붙이는 지휘관이라면, 야당 원내대표는 이를 막아내는 투사였다.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올라왔을 때를 보자. 당시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민주당 유용태 원내대표와 함께 탄핵안 통과를 주도했다. 그들은 3월 12일 새벽 야당 의원들을 이끌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을 차지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전격 진입했다.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넥타이를 푼 채 여당 의원들과 본회의장 농성을 주도하고 있었다. 양측은 의장석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고 본회의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치열한 대치 끝에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안이 가결되자 김근태 원내대표는 항의의 표시로 의석 책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홍사덕 원내총무는 탄핵 역풍에 휘말려 17대 총선에서 결국 낙선했다.



 반면 여야 원내대표는 정국이 경색되거나 국회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이를 풀어내는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에서 두 차례 원내총무를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였던 한화갑 전 의원은 대표적인 타협형 원내사령탑으로 꼽힌다. 두 사람이 원내 파트너였던 1998년 당시 여야는 김종필 총리의 임명동의안을 6개월 동안이나 처리하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었다. 김종필 총리의 동의 여부를 놓고 투표가 진행되던 중 통과가 확실치 않자 여당 측에서 투표 절차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투표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사과 없이는 재투표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중단된 투표 절차를 살려보기 위해 두 원내총무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처리를 ‘다시’ 요청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국회에 보내는 것으로 절충해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제한하고, 쟁점 법안에 대해 재적 의원 5분의 3이 동의해야 법안 처리가 가능토록 하는 내용이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제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박희태 전 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타협은 패배가 아니고 그것이 오히려 승리다 하는 생각을 우선 가져야 한다. 타협하면 상대방한테 굴복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타협이 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국회 1년을 책임지게 될 여야의 새 원내대표는 진정한 타협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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