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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부장의 삽질일기] 아니 밭의 풀을 왜 뽑아?

























생각과 달리, 함께 밭을 얻은 친구 셋을 지금껏 한꺼번에 보지 못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쓸 수 있는 시간이 각각이니 그렇다. 친구들은 제 사정에 맞춰 알아서들 봉지를 채워간다. 세일 군이 카톡을 보내왔다.



- 토욜날 풀 뜯고 있으니까 옆밭 아주머니가 같이 뜯어주시던디... 농협에서 사위가 받아놓은 밭을 대신한대요. 마나리꽝 뒤져서 미나리 캐다가 밭에 심는 거로 봐서 시골출신...

- 아이구야 풀 뜯지 말라니까. 풀은 흙을 부드럽게 하구 수분을 유지해줍니다요.

- 알았슈. 이제 안 뜯을뀨. 나두 편하구 좋쥬.

- 유월되믄 뜯을 일 많을껴.

- 유월엔 더워서....



어째 지난주에 가보니 미나리꽝이 휑했다. 무심한 듯 하지만 밭주인장이 나름 공을 들여 가꿔온 터였다. 해마다 미나리가 무릎만큼 자라면 주인장은 하우스 뒤에 놓인 무쇠솥을 닦고 하우스 옆에서 키우는 멍멍이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미나리가 그렇게 몇 번 이발을 하면 단풍 물든다. 옆 밭에 몇 줄 심어져있는 미나리 출처의 비밀이 이제 풀렸다. 할머니는 올해가 이곳에서 첫 농사인 모양이다. 밭의 사정을 잘 몰라 그랬겠다. 그 옆의 옆 밭의 토실토실한 참나물은 내 밭둑에서 파갔을 혐의가 짙다. 그나저나 옮겨 심은 미나리는 고생 좀 하겠다. 할머니의 밭은 흙을 돋아 만들었고 물과 멀다. 매일 조루로 퍼다 붓지 않으면 물 좋아하는 미나리는 옆으로 기며 자라기 십상이다.



세일 군은 할머니와 합작을 하여 괜히 헛심을 쓴 셈이다. 나는 더 이상 풀을 악착같이 뽑지 않는다. 풀과 싸우는 일은 부질없다. 뽑아도 뽑아도 풀은 돋는다. 풀과 나무가 땅의 주인이고 나는 잠깐 그 품에 의탁할 뿐이다. 야생 풀밭은 어디나 싱싱하다. 채소만 있는 밭은 어디나 해충 천지다.



둘이 섞여 자라면 그만큼 벌레가 줄어든다. 풀과 채소에 붙어 갖가지 곤충들은 먹고 먹히며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적당한 풀과 경쟁하는 채

소들이 약을 치지 않아도 스스로 건강한 이유다. 땅을 헤집으며 퍼져가는 풀뿌리와, 그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지렁이들이 만드는 흙은 부드럽다. 풀이 채소들의 양분을 빼앗아먹는다는 말도 괜한 걱정이다. 그렇다면 숲과 자연의 풀밭은 다 황무지가 돼야 하지 않은가.



비 많이 와도 내가 걱정하지 않는 이유 또한 풀 덕분이다. 빼곡한 풀잎은 빗줄기를 누그려 뜨리고 촘촘한 뿌리는 흙을 단단히 붙든다. 이른 봄, 주인장이 경운기를 끌고 다니며 온 밭을 로터리 쳐도 풀들은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돋아난다. 장마 때면 다른 밭들은 둑이 무너지고 표토가 쓸려내려가지만 내 밭은 웬만해선 끄떡없다.



작물들처럼 풀도 해걸이를 한다. 지난해 극성이던 억센 바랭이가 올해는 듬성듬성하다. 대신에 별꽃, 꽃받이처럼 키 낮은 풀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곳곳의 명아주도 한 뼘만큼 자랐다. 그냥 놔뒀다가 키 큰 애들만 뽑아서 엎어놓으니, 다른 밭의 부지런한 이들은 나를 날라리로 볼지 모르겠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린 비 덕분에 채소들은 신이 났다. 한 달 넘도록 기척이 없던 씨앗들마저 싹이 텄다. 손바닥만한 땅에도 냉탕 온탕이 있어, 바짝 마른 쪽에 있던 씨앗들이 이제야 세상구경을 나왔다. 함께 부었는데 한 달 시차가 생겼으니 올해는 수고 않고 두 번을 뿌린 셈이 됐다.



농사를 계기로 알고 지내는 서울신문 문소영 논설위원은 울상이다. 싹이 트지 않아 고구마순을 심었는데, 이번 비에 잠자던 씨앗들이 한꺼번에 깨어난 거다. 밭의 사정을 모르고 다시 뿌려도 된다고 한 내 잘못도 있는데, 어떻게 잘 해보소 문 위원.



완두콩은 멀쩡하게 잘 자라는데, 두 번을 심은 강낭콩은 새들이 모조리 파먹었다. 놈들은 눈에서 엑스레이가 나오는가보다. 이러니 줄기가 자랄 때까지 모기장을 씌워놓거나 모종을 사다 심지 않으면 대책이 없겠다. 감자싹 위에 붙은 무당벌레 11마리를 해치웠다. 2번은 일타쌍피.

허리 펴니 이마에 땀이 살짝 돋는다.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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