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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총리 첫 인사청문 대상 "의원회관서 고스톱" 공격 받아

인사청문회는 1997년 15대 대선의 산물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후보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대선 직후부터 삐걱댔다. DJP 연합의 파트너였던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를 초대 총리로 앉히려는데 인사청문회를 할 경우 JP가 청문회 무대에 서야 했다. 인사청문회 도입을 뒤로 미루려고 하자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DJ의 대선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압박했다.



DJ 대선 공약 … 2000년 도입
'야당 공격 여당 방어' 14년 반복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99년 김태정 법무장관 부인 등이 옷로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다. 결국 2000년 2월 임시국회에서 헌법에 따라 국회의 임명 동의를 필요로 하는 국무총리와 대법원장·감사원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됐다.



 헌정사상 첫 인사청문 대상은 이한동 총리였다. 2000년 6월 청문회 당시엔 이런 사소한 얘기도 오갔다.



 ▶야당 의원=“98년 의원회관에서 의원 몇몇이 고스톱을 친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느냐.”



 ▶이 총리=“그 당시엔 치지 않았으나 국회가 공전될 때 바둑이나 고스톱을 한두 번 친 적은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 등도 제기됐지만 찬성 139표, 반대 130표로 총리인준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김대중 정부의 총리 지명은 잔혹사라 할 만했다. 사상 첫 여성 총리 후보자였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은 위장전입과 농지취득 등의 의혹을 받고 낙마했다. 장대환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도 비슷한 의혹 때문에 부결됐다.



  2003년엔 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 등 이른바 ‘사정기관 빅4’까지 인사청문회가 확대됐다.



 이후 2005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몇몇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문제 등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인사청문회는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를 여권에 대한 공세의 장으로 삼았다.



 2008년 정권교체 후엔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등이 논란 끝에 자진 사퇴하는 등 같은 양상이 되풀이됐다. 인하대 최준영(정치학) 교수는 “인사청문회 도입 때부터 야공여방(野攻與防)의 정파적 색채가 강했다”며 “인사청문회만 하면 ‘왜 이런 사람을 후보자로 지명했느냐’는 여론이 일어나 대통령은 중요 자본인 지지율을 잃고 국정운영을 시작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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