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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기질과 배짱 … 한국 바둑 되살려야죠

문용직 객원기자도 컴퓨터를 통해 대국을 관전하거나 바둑을 둔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바둑도 적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상선 기자]
바둑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어깨너머로 배웠다. 어른들이 기원에 곧잘 데리고 다녔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는 어딜 가나 주변에 바둑 두는 사람이 많았지요.” 6급에 불과한 초등학생을 프로기사(당시 정창현 6단)와 억지 대국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바둑판에 돌을 9개나 놓았지만 어디 상대가 되나요(웃음).”

 지난 3월부터 매주 목요일 중앙일보 바둑면을 담당하고 있는 문용직(56·전 프로기사 5단) 객원기자의 어린 시절 얘기다. 어렸을 적 그에게 바둑은 “야! 저렇게도 두는구나”라는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는 경북 김천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 고등학교는 서울로 올라와 바둑 명문인 충암고를 다녔다. ‘대학은 한번 가볼 만하다’는 생각에 서강대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도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결국 1983년 한국기원에 입단해 프로기사의 길을 걸었다. “다시 바둑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가 처음 바둑을 배운 이후로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둑의 열기와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바둑을 둘 줄 안다는 사람은 늘어났는데 대국 경험자 비율은 줄고 있다. 프로 바둑기사에 대한 관심도 덜하다.

 한국 바둑이 게걸음을 치는 이유로 그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바둑계도 잠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래전부터 개선점으로 지적되어 온 입단의 높은 문턱(한 해 12명)도 걱정했다. 그는 “입단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실험과 모험을 어렵게 만든다”며 “그런 식으로 그저 평균에 머물면 창의성은 얻을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바둑이 중국에 밀려 주춤거리는 것도 그 결과로 생각한다. 그는 “승부사 기질과 두둑한 배짱이 한국 바둑의 강점”이라며 “그 본질을 회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훈현 9단을 기억에 남는 ‘승부사’로 꼽았다.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문 기자는 같은 해 열린 제5기 박카스배 결승전에서 조훈현 9단과 겨룬 적이 있다. “첫 수를 두기 전에 중압감이 대단했지요. 몇 수 두면서 저는 일찌감치 승부가 났다 생각했는데 그분은 저 같은 하수와 두면서도 끝까지 미동이 없었어요. 참으로 절제된 승부사였습니다.”

 입단 이후에도 정치학, 주역(周易) 등의 공부를 병행한 것이 흥미롭다. 그는 94년 서울대에서 한국 정당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학을 공부한 이유를 물었더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2007년에는 『주역의 발견』이라는 책을 펴냈다. “주역 하면 뭐 아는 것처럼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합리적으로 주역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부족한 것 같아서 직접 공부를 해봤지요.”

 98년엔 『바둑의 발견』을 냈다. 한 바둑전문지는 이 책에 대해 “바둑판 위에서 동양의 직관과 서구의 합리가 만나는 것을 기대한다. 바둑사의 굵직한 획임이 분명하다”고 평했다. 책 머리말에서 그는 “인생의 여러 가지 험한 꼴을 보며 심신이 다소 지쳤다. …지쳤을 때 필자에게 다시 활기를 북돋워 준 것이 바둑이었다. …무엇보다 바둑은 인생에서 마주치는 지저분한 관계와는 달리 승부가 깨끗하지 않은가”라고 썼다.

그렇게 그는 10년 가까이 다소 멀리했던 바둑으로 결국 다시 돌아왔다. 그는 “바둑만큼 인간의 본성과 잘 맞는 보드게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바둑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두는 것이라고 했다. “바둑을 둘 때는 온몸의 신경 세포를 다 곧추세워야 할 정도로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혈관을 뛰어놀게 하는 동적인 운동이지요.”

 그는 『바둑의 발견』 끝에 이렇게 썼다. “바둑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바둑의 맛을 알게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깊이 몰라도 되고. 바로 그 점에 바둑의 유쾌함이 있을 것이다.” 그는 중앙SUNDAY에 3주에 한 번씩 ‘반상(盤上)의 향기’라는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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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