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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한의 왕직구] 대한의사협회, 누구를 위한 단체인가

왕상한
비상임논설위원·서강대 교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고, 충격을 받은 국민들 또한 의사들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지금, 12만 의사들의 대표기관이라는 대한의사협회가 회장 탄핵 결의안을 상정하고 가결했다. 회장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이들이 의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듣기 민망한 욕설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몸싸움까지 벌였다. 건장한 체구의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까지 동원한 의협의 집안싸움은 최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회장을 쫓아낸 대의원회는 회장의 핵심 측근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회장의 선거 재출마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규정을 의결했다. 이에 질세라 탄핵을 받아 쫓겨난 회장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에 근거해 정부로부터 설립을 허가받은 단체다. 이 땅의 모든 의사는 그 가입과 정관 준수가 법으로 강제돼 있다. 정부로부터 의료와 국민보건 향상에 관한 협조를 요청받을 경우 협회는 반드시 이에 응해야 한다. 의협은 의사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의사들만을 위한 이익단체가 아니다.

 그 뿌리는 1908년 의사 10여 명이 모여 만든 의사연구회에서 찾는다. 광복 후 1947년 설립된 조선의학협회는 다음 해 대한의학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간염퇴치 캠페인, 식중독 예방 캠페인, 금연운동, 태아 성감별 방지 캠페인 등을 펼치며 국민의 머릿속에 공익단체로 각인됐다. 이 단체는 1995년 대한의사협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요즘도 대한의사협회는 활발한 공익활동을 펴고 있다. 금연 캠페인을 비롯해 올바른 손씻기 캠페인, 아동학대 예방, 생명나눔 인체조직 기증서약, A형 간염 예방 등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의협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회비 납부율 60%대가 말해주듯 의사인 회원들조차 협회를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최근 총회를 열고 의협 회비를 무기한 납부하지 않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12만 의사가 회원인 의협이 이처럼 왕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의협의 2013년도 예산은 426억원으로 대기업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보다 많다. ‘파산 직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재정위기’라는 의협이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해마다 문제로 지적됐던 ‘현금영수증’.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객관적으로 증빙할 자료가 전혀 없음에도, 임직원 서명만 있으면 현금을 내주는 시스템이다. 세법상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통해 몇 년 전까지 매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탈세’가 이루어졌다.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의 외부 연구용역을 비롯한 비용지출 내역도 의문투성이였다. 상임이사회의 의결 등 필요한 절차들을 모두 거쳤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수천만원짜리 용역들이 의심쩍은 수의계약으로 돌아갔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연구결과물은 기존 연구물을 그대로 베껴낸 것도 있고, 아예 제출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비를 환수한 사례는 없다.

 최근 의협 회장들의 면면을 볼까. 2007년 당시 장동익 회장은 의협 공금을 비자금으로 빼돌려 정·관계 로비를 펼친 사실이 드러나 유죄를 선고받았다. 장씨에게 인정된 혐의는 업무상 횡령,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공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무려 5개. 그 뒤를 이은 주수호 회장 집행부는 의료광고심의 수수료를 전용한 사실이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지적됐다. 당시 집행부의 모 임원이 사용한 법인카드는, 업무추진비와 별도로 월 사용액이 2000만원을 넘기도 했다. 대리투표 등 부정선거 시비 속에 취임한 경만호 회장도 억대에 달하는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등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그리고 노환규 회장. 몇 달 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잘못된 의료제도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에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자해행위를 했다. 이 모습과 SNS에 글을 올린 것 등을 문제 삼아 의협은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의원회 의결을 통해 그를 탄핵했다. 과거에도 탄핵 시도는 있었다. 횡령 등 불법행위가 이유였지만 탄핵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명예훼손, 품위손상 등으로 내부 분열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이번 탄핵 시도는 성공했다.

 노 회장을 몰아낸 대의원회는 원격의료 등 의료계 현안과 관련해 회장 주도로 이루어진 대정부 협상에 강한 불만을 품고 회장을 배제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그리고 회장을 쫓아낸 지금 비대위는 정부와 이미 합의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놓고 의협 집행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인 회원은 협회를 탈퇴하고 싶어도 법에 의해 가입이 강제돼 있으니 탈퇴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민은 의협의 이런 모습에 불안하기만 하다. 의사를 개별적으로 만나면 절대다수가 훌륭한 인품과 건전한 상식을 가진 전문가들인데, 의사들이 모여 만든 대한의사협회는 왜 이 모양일까.

왕상한 비상임논설위원·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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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