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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세월호, 시민제의를 제안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외환위기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국가파산의 주범이 누구인지 분명했던 그때엔 분노를 집중시킬 수 있었고 치죄가 명백했다. 지금은 공범이 사방에 깔려 동시다발적 처벌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처벌은 재기를 위한 국민적 다짐이다. 청해진해운과 항만 비리를 엄단해도 어린 생명들을 수장시켰다는 공범의식은 가시지 않는다. 한 달 동안 그저 눈물바람이었던 까닭은 무고한 아이들이 수장된 바다 위로 우리의 초라한 몰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난은 항상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뚫고 나온다. 넉넉잖은 가정의 자녀들이 설레며 나섰던 수학여행은 부패한 해운자본에 맡겨졌고, 위험천만한 과적의 뱃길은 매수, 묵인, 기만, 유착으로 악취가 진동하는 검은 늪이었다. 민생과 안전을 높이 외쳤던 국가가 거기 있었다. 구난(救難) 기관들이 제각각 허둥대는 공허한 활극도 목격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를 부르며 팽목항에 몸져누운 유족들이 있고, 홀연 잠적한 유족이 있다. 젊은 엄마는 자살을 기도했고, 아빠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관상민이 합작한 공모살인이자 허술한 한국 사회가 낳은 예정된 재앙이었다. 장례는 각각 치러졌지만, 국민 모두가 죄인이자 상주(喪主)인 국민 초상이다.



 그렇기에 시민 장례를 치르지 않고서는 망자(亡子)를 보낼 수 없다. 탄생보다 죽음을 더 각별하게 생각해온 한국의 관습도 그렇거니와 우리 모두가 사죄해야 할 ‘사회적 죽임’이라 그렇다. 범시민적 의례를 통해 젊은 원혼을 달래야 한다. 무너진 유족들을 어쨌든 부축해야 한다. 참사백서와 국가개조 제안서가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비탄과 고통의 강물에 떼밀려 온 지 한 달, 이제 강 건너로 발을 옮길 때가 되었다. 일종의 시민장(市民葬) 형식으로 삼학제의(三學祭儀), 즉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적 제의(祭儀)를 한 달 간격으로 실행해 갈 것을 제안한다.



 예부터 한민족은 안녕을 빌거나 망자의 영혼을 달랠 다양한 제의(祭儀)를 발전시켰다. 횡사·객사한 사람의 초상은 구슬펐다. 혼을 불러 위무하고 극락왕생하기를 슬픈 장단과 춤사위에 실어 기원했다. 유족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저 아이들의 원혼을 보내려면 그런 집단 의례가 필요하다. 5월 하순께 광화문 광장에 범시민단체가 주관하는 초혼, 진혼제를 개최하고 ‘결코 너희들을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위령제를 거행하는 것 말이다. 이런 ‘인류학적 제의(祭儀)’를 통해 슬픔을 접고 무너진 연대감을 수선하는 것은 비단 원시 부족인들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단, 이념 개입은 사절이다.



 ‘사회학적 제의’는 참사 원인과 구난 과정의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관상유착과 정부의 책임방기를 냉철하게 고발하는 범시민적 감사 행위를 말한다. 인류학적 제의에 권력이 낄 자리가 없듯이 사회학적 제의에서 정부와 공권력은 감사의 대상이다. 관피아 징벌과 책임자 엄벌 약속을 이행할 당사자는 관료집단이 아니라 외부전문가와 언론, 종교, 학계, 법조계, 노동계 등 시민연합체여야 한다. 시민권력이 죽어 있었기에 ‘국민행복’의 주체는 관료였고 관료가 만든 행복기획에 시민이 배치되었다. 시민사회에 도덕적 긴장이 증발한 것, 유족들이 청와대로 직접 가야 하는 소통 형태는 모두 국가 중심적 통치구조의 적폐에서 비롯된다. 시민견제가 없는 곳에 또 다른 세월호가 어디엔가 정박 중일 것이다.



 ‘정치학적 제의’에서 비로소 정부의 자리가 존재한다. “대책을 갖고 사과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정부 중심적 대응을 암시하는데, 총리실·수석실이 주도하거나 정부 내 위원회 설치로 일관한다면 이번에는 ‘청와대 침몰’을 불러올 것이다. 대통령은 범시민대책기구 결성에 방패막이가 돼야 하고, 광범하고 공정한 조사, 감사활동을 벌이도록 권력을 위임해야 한다. 관료는 보조자다. 여기서도 정권 전복, 대통령 퇴진을 염두에 둔 단체는 배제다. 정치학적 제의를 통해 만들어진 조사·감사보고서는 처벌과 척결, 그리고 재난 안전망의 총체적 재정비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벌써 민변(民辨)이 제출한 17가지 개혁안이 나오지 않았는가. 시민결의안을 정부가 채택하는 발상 전환적 결단과 시민의사를 결집하는 ‘수용의 정치’가 선을 보여야 한다. 약 5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국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족하다. 진도에 위령탑을 세워 시민 각성의 원점으로 삼는 것, 4월 16일을 재난 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하는 제안 등이 속출할 것이다.



 이제 멍멍했던 정신을 수습할 때가 되었다. 아직 시신이라도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절규가 가슴을 때리고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교신들이 비수처럼 찌르기는 하지만, 국민적 상실감을 갈무리하고 재난안전 강국으로 행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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