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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3회] 세월호, 잃어버린 72시간 골든타임

[앵커]

보신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을 치게 한 아이들의 휴대전화 동영상은 사고 당시와 그 직후에만 제대로 했어도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인명 구조의 관건인 골든 타임 72시간, 이 금쪽같은 시간 동안 왜 배 안에서 생존자는 커녕, 시신조차 데리고 나오지 못했는지 박성훈 기자가 되짚어 봤습니다.

[기자]

[제주해상관제센터-세월호 :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지금 배 넘어가 있습니다.]

[진도해상관제센터-세월호 : (귀선 지금 침몰중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전 10시 46분, 신고가 들어간 지 2시간이 채 못 돼 세월호는 선수만 남고 모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흘동안 투입된 해경,해군 연인원은 1000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는 없었고, 물 위로 떠오른 시신을 수습한 것을 빼면 선체 내 시신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선체 안에서 숨진 희생자를 발견한 것은 민간잠수사였습니다.

[봤어. (시신) 3구 발견하고 수색중]

[뭐? 3구?]

곧바로 터져나오는 가족들의 비명소리.

실종자가 발견된 곳은 4층 객실 유리창을 통해서였습니다.

생존자 구조 한계 시간인, '골든 타임 72시간'

살아있을지 모를 생존자 수색을 위해 구조의 총체적 책임을 맡은 해경과 해군은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한 걸까.

취재진은 해경이 실시간으로 작성한 상황보고서를 입수해 군경이 한 구조 작업부터 다시 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해경이 맨 처음 바닷물에 입수한 시각은 배가 침몰하고 2시간이 더 지나서였습니다.

오후 1시, 목포 122구조대 8명이 10분간 물에 들어갔습니다.

오후 3시에는 4명이 투입됐고,

오후 5시 서해해양경찰청 특공대 18명이 도착했지만 사고해역 주변에서 "선내 공기가 많이 빠져나와 선내 진입이 곤란하다", "공기 배출완료 시 잠수사를 투입해 선내 수색예정"이라고 보고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후 6시쯤에는 30분간 잠수요원 4명이 입수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해경은 이날 해경 잠수요원 118명과 해군 특수요원 42명을 투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물속에 들어간 잠수인력은 16명에 불과했고, 입수시간은 단 7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사고 발생 첫날 자정까지 벌어진 구조 작업의 전부였습니다.

[나장균/UDT 중앙회 회장 : 공기가 나온다고 수중으로 잠수개념에서 못 들어갈 이유가 없죠.]

첫날 밤 사고 해역의 모습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조명탄 아래 해경 구조정들이 떠다닙니다.

해경 구조정 한 대만이 세월호 선수 옆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잔잔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왜 실제 군경의 입수 인원은 16명밖에 안 된 걸까.

이날 사고 해역에 다녀온 민간 해난구조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강재경/바다살리기 해난구조대 대장(4월16일) :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고요. 유속이 너무 빨라서 접근하기도 힘든 상황이에요. 시야 확보도 안돼 있고 시야가 15cm 정도….]

[강재경/바다살리기 해난구조대 대장 : 해군이라든지 특수부대들하고 지금 선체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경도 조류가 셌기 때문이라고 똑같이 해명했습니다.

취재진은 과연 사고 첫날 조류가 얼마나 강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으로부터 받은 사고 해역의 유속 측정치입니다.

사고 당일 오후 1시 20분, 유속은 초당 최저 0.02m까지 내려갔다가 오후 5시쯤 0.8m로 빨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저녁 7시 40분, 초당 0.04m로 유속이 느려집니다.

물살이 멈추는 정조시간입니다.

사고 나흘째, 민간잠수사가 첫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유속과 비교해 봤습니다.

민간잠수사가 입수했던 19일 새벽 3시반, 유속은 초당 0.07m였고 시신 발견 당시 유속은 초당 0.3m였습니다.

초당 유속 0.3m까지는 수중 수색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사고 첫날 수색은 낮 12시 40분부터 오후 2시 20분,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는 가능했고, 100m가 넘는 선체 길이를 감안하면 군경의 잠수 인원은 훨씬 더 많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겁니다.

[민간잠수사 B씨 : 똑같은 물때인데 지금은 다 들어가요 똑같이. 근데 왜 그 때 당시에는 왜 못들어간다고 했냐 그게 중요한 거죠.]

사고 둘째날.

세월호의 선수는 어제보다 더 가라앉았습니다.

돌출됐던 앞부분의 높이가 어제보다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경과 해군의 입수 상황은 첫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새벽 3시 6명, 오전 7시 46분 2명, 8시 5분 민간 잠수요원 3명과 낮 12시 반 3명이 전부입니다.

사고 둘째 날 밤 12시까지 민간인을 포함해 단 14명이 입수한 겁니다.

첫날보다 군경의 입수 잠수요원 수가 오히려 줄어든 겁니다.

하지만 해경 종합 보고서에는 "수중수색 잠수요원 632명, 해경 288명, 해군 344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해경이 밝힌 대로 동원된 인원은 그만큼 많은데 왜 실제로 잠수하는 인원은 턱없이 적은 걸까.

이날 오후 2시 10분,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해역을 방문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례."

해경과 해군의 지휘를 맡고 있는 김석균 해경청장과 해군 김판규 소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김판규/해군 소장 : 오늘 잠수사들도 220여 명이 특히 과거에 천안함이라든지 위도 작전 때 특수 작전했던 요원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같이 합동으로 해서 잘 지원해서 성공적으로 인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 네, 더욱 마음 든든합니다. 고맙습니다.]

조타실로 향한 대통령은 해경의 보고도 받습니다.

해군과 해경 모두 준비가 돼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겁니다.

[김문홍/목포해양경찰서장 : 어제는 기상이 좋았고 오늘 오후부터는 기상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후에도 최선을 다해서 입수를 했고 오늘 또 세 사람의 시신을 발견해서 유가족에게 인도했습니다. 한 사람도 실종되지 않도록 다 찾아서 같은 마음을 같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다시피 하는데도 구조가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생존자를 구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현장이 어렵고 힘들겠지만 모든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존자 구조, 이를 위한 입수는 이날 더 이상 없었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

이날 오전 이용욱 전 해경청 정보수사국장이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

[이용욱/전 해경청 정보수사국장(4월 17일) : 조금이라도 더 들어올림으로써 구조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12시 반에 정조되는데 그때를 맞춰서 모든 전문 가와 장비를 동원해서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12시 반에는 이뤄질 수 있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공기주입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또 공기주입을 한다고 입수 수색작업이 중단돼야 하는 걸까.

이날 밤, 실종자 가족들은 해경이 보여주는 사고 해역 영상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컴컴한 밤 바다, 아무리 쳐다봐도 수색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족들의 속마음만 타들어갑니다.

그렇게 금쪽같은 시간은 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고 셋째 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해군경의 수색 입수 기록은 없었습니다.

대신 오전 9시 반, 민간 구난업체 언딘 잠수요원 2명이 공기주입차 입수했고, 오전 11시 20분쯤 선체 공기 주입이 시작됐습니다.

[신원섭/해양경찰 특수구조단(4월18일) : 갑판 위의 에어벤트라는 공기가 나오는 구멍으로 (공기를) 넣었습니다.]

"오후부터 선내 식당 외벽까지 안내줄 설치를 완료한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30분 뒤인 오전 11시 50분, 세월호의 선수가 수면에서 사라졌습니다.

해경이 급히 35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대형 부표 2개를 세월호 선수에 설치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면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누워있던 부표가 시간이 지날수록 똑바로 세워집니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부표를 당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수색 상황이 달라집니다.

민간잠수사들이 본격적으로 구조 작업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부터는 언딘 협력업체 잠수사들도 속속 도착해 투입됩니다.

가이드라인이 설치됐다는 보고도 올라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사고 나흘째에 선체 내 시신이 처음 발견된 겁니다.

사고 발생 72시간 동안 정부는 내내 우왕좌왕했습니다.

상황보고서를 놓고 봐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 만큼 실제 입수 작업의 진행은 부족했습니다.

[장민/실종자 가족 : 1분 1초가 바닷속에서 급한데 우리 자식들은. 하루를 넘기고 나서도 또 시간을 끌어요.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뜻으로밖에 안 들리잖아요.]

민관군의 구조작업을 총괄해야 할 지휘체계 역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안전행정부가 지휘를 맡았다가 해양수산부로 바뀌었고, 해경이 지휘를 맡다가 해군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 사이 해경과 해군 지휘부 사이의 갈등도 벌어졌습니다.

사고 이틀째 아침, 수색을 위해 대기 중이던 해군 특수구조대가 투입되지 못한 것이 해경 지휘부가 막았기 때문이란 문서까지 나온 겁니다.

[진성준/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해경이 주도하니까 해군은 뒷짐 지고 있었다, 이게 지금까지 해군의 입장이다, 이런 말이에요.]

[손차수/해군본부 군수참모부장 : 해경도 능력이 없는 건 아니고, 긴밀한 협조하에 실시하고 조정이 안 되면 수중에선 굉장한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고 초기, 정작 심해 잠수 능력이 뛰어난 민간잠수사들은 구조 작업에 동참할 수조차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지적한 건 군경의 스쿠버 다이빙 방식 문제였습니다.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면 잠수 시간이 짧고, 깊은 수심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표면공기주입방식의 잠수사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황대영/한국수중환경협회장 : 수심이 30미터에서 스쿠버 탱크로는 1개만 매고 들어가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대 10분에서 15분, 표면공급식 잠수를 해야 되는데 이 방식이 늦게 투입이 됐죠. 그런 것도 아쉬운 문제죠.]

지금 세월호 수색 작업이 선체공기주입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고 초기 지휘부의 판단이 잘못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습니다.

심지어 사고 초기 해경 지휘부는 수중에 들어가야 할 정조시간조차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해경은 정조시간에 맞춰 수중수색을 했다고 했지만,

[고명석/사고대책본부 대변인 (4월 17일) : 정조가 07시, 낮 12시 45분, 저녁 7시 전후가 되기 때문에 정조 시간에 집중적으로 수색을 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맹골수도의 정조 시간은 오전 4시 2분과 9시 27분 등이었습니다.

구조팀이 정조 시간이라고 밝힌 때는 오히려 조류의 흐름이 센 최강조류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조류가 강해 수색이 안 됐다는 이유가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 겁니다.

해경청장은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했습니다.

[김석균/해양경찰청장(4월30일) : 저는 해난사고의 구조 책임자로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초기 구조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질타를 머리 숙여 받아들입니다. 희생자 가족 여러분과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와 위로는 이번 사고 대처 과정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되짚어 이같은 참사와 허술한 대처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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