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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꿈을 꾼 듯 … 제자리로 돌아가는 마력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 프로코피예프(1891~1953).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1918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위키피디아]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여러분 중 난생처음 듣는 곡인데도 ‘이건 혹시 이 작곡가의 작품이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어디 가서 ‘나 클래식 음악 좀 안다’고 자랑하셔도 될 일이다. 날쌘 음표들이 똑똑한 화성들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하이든의 곡임을 짐작하고, 비슷하긴 한데 훨씬 더 성악적인 멜로디에 극적인 분위기라면 그것이 모차르트임을, 거기에 반음계적 선율과 화성이 더해지고 가벼움이 얹어지면 그것은 멘델스존임을 구분해낼 수 있다면 이미 그들 고유의 언어와 어법을 파악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작품들이 빚어내는 일련의 이미지로 작곡가를 유추해내는 것까지 가능하다면 ‘나 클래식을 꽤 잘 이해하는 것 같다’고 하셔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작곡가들의 어법뿐 아니라 말하는 내용까지 이해해주는 셈이 될 테니.

나만의 시각으로 그 내용들을 키워드로 만들어본다면 베토벤은 ‘자유의 쟁취’, 슈베르트는 ‘절망 속의 희망’, 슈만은 ‘사랑’, 쇼팽은 ‘그리움’, 브람스는 ‘결핍’, 차이콥스키는 ‘꿈’, 쇼스타코비치는 ‘고발’이라 하겠다. 이 키워드들은 그들이 일생을 통해 뱉어낸 작품들 대부분에서 각기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이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예술로 끌어올린 키워드를 나는 ‘귀소본능’이라 하겠다.

프로코피예프는 ‘공상’의 작곡가다. 동시대의 동향 출신으로 가장 걸출한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가 현실과의 정면승부를 표방했다면 프로코피예프는 무한의 에스카피즘(escapism, 현실도피)을 그린다. 20대에 작곡한 ‘vision fugitive(덧없는 환영)’는 사실상 그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사고 구조다. 이 작품은 1분을 넘길까 말까 하는 스무 개의 소곡들을 묶어놓은 모음곡이다. 예쁘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괴한, 소박하지만 무언가 폭력적인, 신나지만 왠지 괴로운 모티브들은 현실세계에 전혀 발을 담그지 않은 듯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백건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녹음.
비슷한 성격으로 조금 앞서 작곡된 ‘Sarcasms(대개 ‘풍자’라고 번역하는데 ‘비꼼’에 더 가깝다)’가 있다. 매 곡이 러시아식 군대 행진처럼 시작하지만 이내 세상을 감싼 껍데기가 사라지고 사유하는 개인만 덩그러니 남는다. 영화 속 카메라가 수많은 군중 사이의 어떤 한 개인을 지목해 그를 클로즈업하다 아예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버리며 화면이 하얘져버리는 것처럼. 스스로를 모차르트의 후예로 여겼다는 것 또한 베토벤식 ‘목표에의 돌진’과는 대척점과도 같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가 이런 스케치들을 모아 연주용 작품으로 만들면 다소 아이러니한 공통점들이 생긴다. 대표작 교향곡 제1번 ‘고전’ 1악장은 작곡가 자신의 설명처럼 20세기에 환생한 하이든이 썼음직한 멜로디와 하모니로 시작한다. 특유의 유머와 풍자도 그대로 모방했다. 그런데 이내 이상한 세계로 빠져버리고 만다. 종전에는 불협화음으로 취급받던 20세기식 화성이 마구잡이로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 주제들이 한 박자씩 늦게 나오는 것처럼 엇박자로 진행되며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린다.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든 게 꿈이었구나’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동화와 똑같은 엔딩을 맞이한다. 다른 대표작 ‘피터와 늑대’의 유명한 오프닝 테마도 꼭 같은 형식이다. 평화로운 아침의 다장조 곡은 시작한 지 네 마디 만에 이상한 변주를 거쳐 내림마장조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나 사장조와 내림다단조까지 거치고도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슬쩍 다장조로 돌아오고 만다.

이 귀소본능은 단순히 원래 조나 분위기로 돌아오는 등의 방법론을 넘어 시나리오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스스로가 쓴 모든 곡 중 최고라고 말했다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그렇다. ‘늙으신 할머니의 이야기’(이 제목으로 발표한 피아노 독주곡도 있다. 작품번호 31)처럼 단순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는 아주 서서히 발전해 곧 거대한 참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예의 에스카피즘이 2악장에서는 무궁동으로, 3악장에서는 ‘덧없는 환영’들의 연속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마지막 악장에 다다랐을 때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조성음악으로 돌아온다. 매우 전형적인 러시아 민속 자장가의 멜로디. 집으로,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비통한 절규가 시작 부분의 ‘이야기’와 상응하면서 곡은 비로소 완성된다. 외면은 2번과 상이해 보이는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나 후기 작품인 ‘바이올린 소나타 1번’도 이 플롯을 똑같이 가동하고 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자의 절규는 처절하지만 광적이지도, 그렇다고 초인간적이지도 않다. 그저 슬플 뿐이다.

지난 4월 16일 이후, 이전까지 갖고 있던 모든 세계관이 통째로 부서진 것만 같은 기분의 나날들을 보냈다. 많은 분들이 나와 같았으리라 싶다.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그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뿐인 그분들이 또 떠오른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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