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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이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연휴 직전 발생한 서울지하철 추돌 사고는 저(低)신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승객들에게 잠시 앉아 있으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승객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선로를 통해 대피했다. 서울메트로 측은 선로에 다른 열차가 들어올 수 있어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대기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승객과 서울메트로 중 어느 판단이 맞았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다만 승객들이 공적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지 않은 것만큼은 틀림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훌쩍 커진 우리 사회의 불신 수위를 반영하는 사례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 더 나은 삶’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의 경우 응답자의 23%만 “정부를 믿는다”고 답했다. 그리스·이탈리아 등과 함께 바닥권이다. OECD 평균(39%)에 비해 매우 낮았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조사된 것이다. 그 후 신뢰도의 향방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짐작할 일이다.



 현대 정치는 물적·인적 자본 외에 사회자본에 주목한다. 사회자본이 뿌리 내려야 성숙한 민주주의가 피어난다는 것이다. 사회자본의 핵심이 바로 신뢰다. 다른 사람이 호혜성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각자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타적 행위를 감행한다. 자발적 이타야말로 진정한 민주사회의 초석이다. 세월호·서울지하철 사고는 그렇지 않아도 낮은 신뢰자본을 더욱 갉아먹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신의 풍랑에 오른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의 대응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신뢰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공적 영역에 있다. 엉터리 구조정보를 발표한 재난본부, 참사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국민 애도 분위기에서 골프를 친 고위 공무원, 위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청와대·국회가 신뢰자본을 잡아먹었다. 신뢰 회복을 위해 당연히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바닥난 ‘신뢰계좌’를 채울 수 없다. 여야·시민단체·교육계, 나아가 시민 각자가 동참해야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뢰의 기본은 투명한 소통이다. 정부와 시민 사이에 깨끗한 정보가 원활하게 오가야 사회 믿음은 축적된다. 서울지하철 사고 때로 돌아가보자. 서울메트로 측은 벌어진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무조건 앉아 있으라고 했다. 열차 간격을 조정하기 위해 잠시 정차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안내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대응 방식·태도로는 시민이 공공기관에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요즘 국가 재난대응체계를 손질하고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하면서 관리·감독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조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신뢰 살리기’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대한 공자(孔子)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의미심장하다. “국방·경제·신뢰가 중요하며, 그중에서도 신뢰가 으뜸이다. 백성이 믿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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