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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관료제의 실패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2011년 4월 농협 전산망이 통째로 마비됐다. 3000만 명에 달하는 고객이 혼란에 빠졌다. 전산기록이 없으니 돈을 찾지도, 대출을 갚지도 못했다. 카드도 무용지물이 됐다. 금융당국은 분주히 움직였다.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24시간 비상태세를 갖췄다. 이유를 알아내고 고객 피해를 줄이라고 농협을 독촉했다. 농협은 백업센터에 남아있는 기록을 부랴부랴 되살렸다. 며칠이 지나 창구거래부터 하나씩 재개됐다. 당국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복구상황을 알렸다. 여기까진 나쁘지 않았다. 열흘쯤 지났을까. ‘전국에 있는 현금지급기(ATM) 모두가 정상화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함께 자리 잡고 있던 여의도 건물 지하 1층에 농협 ATM기가 있었다. 매점과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목, 손을 뻗으면 닿는 위치였다. 발표 당일은 물론 다음 날 아침까지 이 기계의 화면엔 ‘점검중’이라는 글자만 나왔다. ‘완전복구’를 부정하는 증거가 당국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도 담당자들은 믿지 못했다. 모든 ATM기가 정상화됐느냐고 묻자 다들 ‘틀림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잠시 멈칫하더니 ‘그럴 리 없다’고 강조했다. 지점들로부터의 보고를 모아 농협이 알려준 확실한 내용이라고 했다. 전화를 붙잡은 채로 아랫사람에게 다시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등잔 밑’의 상황을 알려주자 이들 모두 침묵했다. 잠시 뒤 다들 똑같은 말을 했다. ‘이상하네요….’



 적어도 이때, 금융당국의 시스템은 오작동을 했다. 어디선가 끼어든 잘못된 정보가 여과되지 않은 채 보고 라인을 타고 올라갔다. 이 과정에 있는 숱한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보고와 숫자를 위에 전달하느라 바빴다. 출근길 옆에 놓인 ATM기를 통해 맞는지 그른지를 확인하는 이가 없었다. 현장과 동떨어진 시스템은 이렇게 ‘먹통’이 됐다.



 현대국가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관료제다. 말단 공무원부터 대통령까지, 크고 작은 고리로 얽혀 사슬을 이룬다. 고리마다 책임과 역할이 분명히 주어져있다. 명령과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된다. 잘 작동하면 효율적이다. 튼튼한 사슬이 경제를 이끌고,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이 사슬이 현실과 따로 놀고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면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 오히려 국가를 옭아매는 족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이런 조짐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인재로 시작돼 관재가 됐다. 각 부처는 손발이 안 맞았고, 우선권과 책임을 둘러싸고 갈등했다. 유족들의 절박함과 국민의 분노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언행도 여럿 나왔다. 정부는 부랴부랴 ‘책임자 엄벌’과 ‘관피아’ 척결을 외치고 나섰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이나 검찰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건 아닌 것 같아서다. 그래서 벌써부터 ‘셀프개혁’ 걱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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