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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 꼭잡은 부모들 “노란 리본 잊지 말아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노란 리본의 정원에서 한 시민이 기도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나들이를 가도 좋을 날씨였다. 그늘 없이 서 있기엔 5월 햇살이 따가웠다. 하지만 두 손을 모아 잡은 사람들은 줄을 벗어나지 않았다.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몇몇은 고개를 숙였고 몇몇은 눈물을 닦았다.

[세월호 침몰] 황금 연휴에도 줄지 않는 추모행렬

 1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앞 합동분향소. 큰길까지 이어진 분향객 줄은 오후 늦게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한 시간여를 기다려 이들은 국화를 제단에 올려놓았다.

 3일 서울시청 앞 분향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떠들거나 웃으면 안 돼.” 한 아빠가 아이 손을 꼭 쥐었다. 10여 분을 기다려 국화를 건네고, 시민들은 눈물을 닦으며 노란 리본에 추모 글을 썼다. 1일 안산 화랑유원지 앞 분향소와 3일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거대한 국화 무덤 앞에 선 분향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형, 누나들. 무사히 안전하게 하늘나라로 올라가세요.

 서울시청 앞. 아빠는 일곱 살 찬희의 손을 쥐고 노란 리본에 꾹꾹 눌러 썼다. 엄마가 다섯 살짜리 동생을 안고 뒤에서 눈물을 닦았다. “아이들이 이 일을 알고 커가야 한다는 생각에 데리고 나왔어요. 아이들이 자랐을 땐 이런 일이 없어야 하니까요.” 아버지 정순재(35)씨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찬희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형이랑 누나가 왜 죽었어?” “왜 데리고 나오지 않아?” 정씨는 “아이에게 부끄러워 이 상황을 다 설명할 수 없었다”며 “오늘의 일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모두 다 정씨와 같은 마음이었다.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 말이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 엄마는 두어 살 됐을 아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노란 리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한 아빠는 다섯 살짜리 아들을 안고 광장 앞에 매달린 노란 리본의 글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미안합니다. 다 바꾸겠습니다.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보내지 않겠습니다….” 글을 읽어가던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3대가 함께 나온 가족도 많았다. 시청 앞 분향소를 찾은 이민영(33)씨는 아버지와 다섯 살 딸 지윤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가 이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죠. 하지만 나중에 희미하게라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가슴 아픈 일이 있었고, 우리가 슬픔을 나누기 위해 같이 모였다는 걸요.”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 둘을 데리고 안산 분향소를 찾은 김상철(39)씨는 “뉴스를 볼 땐 별 반응이 없던 아이들이 영정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질문도 많이 하더라”며 “이 일을 기억하는 게 남은 사람들 몫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김순용(70)씨는 두 시간째 서울시청 앞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고 했다. 수만 개가 넘을 노란 리본을 손으로 펴 가며 읽고 있었다. 안산 분향소도 설치되자마자 둘러보고 왔다. 제일 큰 손자가 숨진 학생들 또래다. “다 우리 잘못인 것 같아. 권위주의도 잘못이고, 그 회사 회장도 잘못이지. 그런데 제일 잘못한 건 그걸 못 고친 우리야. 알면서도 못 고쳤으니….”

 김씨처럼 혼자 분향소를 찾은 60~70대도 꽤 있었다. 좋은 나라를 만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다는 우순제(73)씨는 단정한 재킷을 입고 체크무늬 모자를 썼다. “나는 우리나라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어. 우리 세대가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그는 “나도 공무원이었지만 공무원들부터 많이 바뀌어야 한다. 이 기회에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복을 입고 분향소를 찾은 희생자 또래의 학생도 많았다. 서울 청룡동 문영여고에서 온 열여덟 살 양선아·김세현양은 “진작 분향소를 찾고 싶었는데 어제 중간고사가 끝나 이제야 왔다”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사고 이후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조금 변했다고 한다. “원래는 공부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들 하시잖아요. 사고 이후엔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엄마가 매일매일 TV 보면서 우세요.” 김양은 “이 일을 잊지 않고 좋은 어른으로 자라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 둘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고교생 최소정(16)양도 계속 눈물을 닦았다.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다가도 누가 이 얘기를 꺼내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해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명찰 옆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으니 잊어서도 안 될 것 같아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가지런한 앞머리에 알록달록한 모자 티셔츠. 한하은(24)양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느릿한 몸짓에 초점 없는 눈빛 때문에 한눈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안산 분향소 출구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크리넥스 티슈를 뽑아선 울고 있는 분향객들에게 건넸다. “세 살 지능밖에 안 되거든요. 이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 텐데도 뉴스를 보더니 ‘저기를 가자’고 얼마나 조르던지….” 환경미화원인 아버지 한윤우(60)씨가 모처럼 찾아온 휴일에 분향소를 찾은 이유다.

 한씨는 “삶이 정말 고되다고 생각하던 중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하은양은 단원고 졸업생이다. 특수교육반을 나왔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아이 돌보기도 힘든데 아내는 신경섬유종으로 최근 큰 수술을 받았다. 간병인이 없을 땐 아내와 딸을 돌보느라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처지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이런 가족이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합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하은이가 국화꽃을 내려놓을 땐 웃지도 않고 얌전해지는 걸 보니 가슴으로 뭔가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안산 분향소를 찾은 주부 김점례(56)씨도 “아이들이 나와 사회 전체를 가르치고 갔다”고 말했다. 소아마비 5급 장애인인 그는 걸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몸이 크게 기울었다. “평생 내 고통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먼저라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는 “세월호 사건의 교훈을 잊지 않는 게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며 “묵념하는 내내 ‘미안하다. 고맙다’를 되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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