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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지켜주고 어른이 못나서 … 쪽지마다 ‘미안, 미안, 미안 … ’

그득한 (국화)꽃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겠어요.

추모 메시지에 나타난 국민 마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요. 모두 죄송합니다.

 조문객들은 분향소를 나서 추모 메시지 벽 앞에 서서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어떤 말을 쓸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노란 종이에 가장 먼저 쓰는 말은 ‘미안하다’였다.

 3일, 서울시청 앞 분향소 조문객 10명 중 7명은 추모 쪽지에 ‘미안하다’고 썼다. 조문객 김준생(24·대학생)씨는 “온갖 부정·부당함에 대해 무관심하게 내 인생만 생각하며 살아온 게 미안하다. 부채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안함과 무력감, 죄책감의 정서는 성인 조문객들 사이에 더 강하게 드러난다. 시스템과 구조적인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이 사회의 중추인 기성세대로 귀결된다는 의식에서 ‘내 탓’이라며 사과하는 듯했다.

 중앙SUNDAY 취재진이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공식 분향소와 안산 중앙역 광장, 안산 단원고,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 적힌 추모 메시지 200개를 무작위로 뽑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미안’(91번)이었다. 유사어인 ‘죄송’(6번)과 ‘잘못’(5번)을 합하면 메시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여기에 따라붙는 말로는 ‘어른’(35번), ‘지켜주지 못해’(27)가 가장 많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말도 4차례 나왔다.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정명중 교수는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책임(metaphysic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을 들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희생당하는 동안 살아남은 자로서 느끼는 죄책감을 뜻한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학생은 제대로 놀지 못하고 경쟁에 매몰돼 있다”며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학생 25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안산 단원고 앞은 기성세대의 자성 메시지가 특히 많았다. ‘이렇게 허술한 나라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친구를 잃은 데 이어 이번에도 너희를 지켜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이 아저씨가 해줄 게 없어 미안’ ‘비굴하고 비양심적인 어른들이 너희를 희생시켰다. 못난 어른들을 용서해다오’….

“모두에게 힘을….”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산 공식 분향소 게시판에 한 어린아이가 비뚤배뚤한 글씨로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종의 ‘다짐’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고재홍 경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은 죄를 만회하고 용서받기 위해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을 직접 도울 수는 없기 때문에 살아남은 학생들에게라도 ‘돕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고 교수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미안함을 표현했어야 했다”며 “지도층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오히려 나머지 사람들이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뽑은 정부가 아이들의 영혼을 제대로 달래지 못했기 때문에 죄책감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미안’ 다음으로 많았다. 표본 200건 가운데 41번 나왔다. 이외에도 하늘(27번)에서의 행복(30번)과 명복(4번), 평안(3번)을 비는 메시지도 많다. 종교에 따라 ‘극락왕생’ ‘천국’과 같은 단어도 눈에 띄었다.

 한편 진도 팽목항에는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메시지가 대다수다. ‘내 아들’ ‘내 자식’을 직접 거론하며 실종자 가족들이 써 내려간 문구도 많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 몰려든 전국 각지의 구호물자에도 메시지가 많이 붙어 있다. ‘힘내세요’ ‘꼭 돌아오길 바란다’는 응원과 희망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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