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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13~15대 국회서 세 차례 의장 YS·JP와 함께 9선 최다선 기록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2012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열린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남기며 울먹이고 있다. [중앙포토]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유족들에 따르면 박 전 의장은 최근 혈관계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

박 전 의장은 13~15대 국회에서 잇따라 세 차례 국회의장을 맡았다. 5~10대(경북 달성, 서울 성동을), 13~15대(대구 동을, 대구 중) 국회의원을 지내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최다선(9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지역구에서만 9선을 지낸 기록은 그가 유일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과정(공법행정)을 수료한 그는 처음엔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일했다.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민주당 공천으로 고향 대구 달성군에서 두 차례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세 번째 도전 끝에 1960년 5대 국회에 입성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 구파의 소장파로 활동했다. 5·16 후엔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적, 공화당 정책위 의장과 당 의장 서리 등을 거쳤다.

제5공화국이 들어서자 ‘3김’과 함께 정치활동 규제자로 묶여 출마하지 못했다. 그러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입당해 대구 동구에서 당선됐다. 민정당 대표위원을 지낸 데 이어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자당에선 상임고문을 지냈다. 국회 외무위원장과 남북국회회담 수석대표도 역임했다. 1989년 말에는 정계개편 구도를 발설, 민정당 대표위원직을 물러나기도 했으나 5개월 만에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후 2000년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는 첫 사례를 남겼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고 40년간 몸담았던 정계에서 은퇴했다.

정계 인사들은 고인을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기억한다. 정치감각도 뛰어나고 합리주의와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다고 회고하는 이들이 많다. 대구 달성 출신으로 ‘TK(대구·경북) 원로’로 분류되지만, 정작 본인은 계보정치를 싫어했다고 한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고인에 대해 “타협을 중시하고 한마디로 정치를 아는, 큰 정치인이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그만큼 큰 그릇이니 여러 곳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회의장도 여러 번 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족은 조동원 여사와 1남3녀. 빈소는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이날 빈소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가 찾았다. 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다.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이다. 02-798-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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