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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께

부처님, 내일모레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지 2638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기쁜 축제의 날에 저희는 차마 기뻐하지 못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부처님의 생신을 맞이하려 합니다. 도저히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참사가 이 땅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어둡고 차가운 먼바다 속에서 주검이 되어 어미 가슴을 찢고 그 품 안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참담한 일이 2014년 봄,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처님,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제 작은 오라비의 열 번째 기일이기도 합니다. 암으로 갑작스레 가족 곁을 떠난 지 오늘로 꼭 10년이 되었지요.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경은 통상적인 ‘자비’를 말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식음을 전폐한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새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단장(斷腸)의 고통이라 했던가요? 그래요. 아마 그럴 겁니다. 어머니는 말을 잃었고 물 한 모금 삼키는 데도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작은아들을 보내고 머지않아 큰아들까지 지병으로 떠나자 어머니는 장례식장에 맨발로 쫓아와 영정을 보고 욕을 하더군요. “이 나쁜 놈들아, 너희들이 어떻게 이 어미에게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놈들아, 일어나라! 니들이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 어머니의 울음은 우리가 아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 슬픔의 끝은 아무래도 분노와 맞닿아 있는 모양입니다.

소중한 아이들이 무책임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생때같은 어린 자식을 잃은 그 부모 심경이 어떻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부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대한민국의 시간은 여전히 사고가 난 4월 16일에 멈춰 있고 온 나라가 공황 상태에 빠져 아직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상처만 깊이 남았습니다. 그 어떤 어진 임금이 돌아가셨다 한들 이보다 더 온 나라를 울음바다로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분노와 자책감에 빠진 국민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들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이런 참사를 빚은 원인은 결국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에 있습니다. 내 생명만 귀한 줄 아는 못된 이기심 탓입니다. 머리 숙여 깊이 참회하며 빕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없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립니다. 자비하신 부처님, 부디 애통해하고 오열하는 저 부모형제들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 둘 곳, 기댈 곳 없어 황망하고 망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 가여운 이들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아직도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가슴앓이 하는 국민 모두에게 이 어둠을 밝힐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부처님,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주십시오. 우리에겐 목숨 걸고 바닷속에 뛰어든 잠수사가 있었고,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달려간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으며,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며 함께 눈물 흘리며 마음 모아준 국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비통한 슬픔과 아픔을 딛고 부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용기를 주십시오. 참회의 눈물로 발원하오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합니다.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사문 원영 올림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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