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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엔 국적이 없다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결혼해도 될지 고민이에요.” 중국인 후배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 친구가 결혼하며 한국에 들어가서 살자고 하는데, 후배가 본 한국 드라마의 시어머니는 무서워서 겁이 난다는 거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고 얘기하면서 내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서울에서 산다는 말에 중국인 친구들은 축복 반, 걱정 반의 표정을 짓곤 했다. 한국 남자와 결혼했는데도 내가 전업주부가 아니고, 내 남편이 요리도 잘한다는 말을 중국인 지인들은 잘 믿지 못했다. 나의 시어머니도 걱정은 많으셨다. 중국인 며느리는 안 좋다는 얘기만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잠깐 거주하신 적이 있다는 시어머님의 지인은 심지어 “중국인 사위는 OK, 중국인 며느리는 절대 NO”라고 하셨다고 한다. 중국에선 남녀가 평등하기에 여자가 기가 세고 남자가 집안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한국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시어머니도 우려를 감추신 채 나를 가족으로 맞아주셨으니까.

나의 남편은 3대 장손이고 난 맏며느리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결혼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제사 준비 중 전을 산처럼 쌓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부치다가 시어머니께 “중국에선 제사를 안 지내요”라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너희 나라에서 제사가 시작된 거 아니니?”라며 의아해하셨다. 예전엔 했지만 사회주의 체제에 들어서면서 없어졌다고 말씀을 드렸고, 내친김에 한국 사회에선 제사 준비는 여자들이 다 하는데 정작 제사를 지내는 건 남자들이냐고 여쭈어 봤다. 그간 억울했던 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다행히 화를 내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나도 옛날엔 많이 힘들었단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은 편해지더라. 조상님을 위한 의무를 다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러고는 나중에는 제사 없이 성당 미사로 대체해도 상관없으시다고 해주셨다. 1년에 13번이나 되는 제사를 묵묵히 챙겨오신 시어머니의 말투는 평온했다. 시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제사만 문제 되는 게 아니다. 명절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나는 외동딸이라 결혼 전엔 중국의 최대 명절인 설에는 항상 중국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국인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편하게 살려면 중국에서 명절을 보내겠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왜 중국에서 명절을 보내고 싶은지, A4 3장 분량의 글을 썼다. 그날 저녁 시어머니를 뵙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글을 보시기도 전에 “그래,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어 하실 테니 중국에서 보내렴”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외에도 국제결혼엔 장애물이 많다. 어떤 중국인 친구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혼수 준비로 불만이 많았다. 시어머니 되실 분이 가구·가전제품을 다 사오라고 하셔서 열을 받는다는 게 요지였다. 나는 맞장구를 치는데 한국인 친구들은 “당연한 건데 왜 열 받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에선 남자들이 다 해오고 여자는 침구만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줬다. 혼수 스트레스를 주지 않은 시부모님께 새삼 감사했다.

얼마 전 어머님과 같이 손을 잡고 걷다가 어머님 친구분을 우연히 만났다. “중국인 며느리라 좋아?”라는 친구분 질문에 어머님은 “그냥 우리 며느리라서 좋아”라고 답하셨다. 난 감동해서 살짝 울먹였다. 고부지간을 표현할 수 있는 한자는 많은 경우가 ‘아플 통(痛)’이다. 하지만 이를 ‘통할 통(通)’으로 바꾸는 쌍방의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닐까.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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