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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신도였던 이용욱, 10년간 해경 요직 두루 거쳐

이용욱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이 1일 새벽 전남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승객 수색과 구조작업을 총괄 지휘하던 이용욱(53)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이 1일 국제협력관으로 전보조치됐다. 이 국장의 과거 경력이 공개된 지 하루 만이다. 그는 1997년 해경에 경정으로 특채되기 전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신자로 7년간 세모그룹에서 근무했다. 세모는 세월호 운영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전신이다.

 해경은 “(이 국장이) 현재로선 구원파 또는 유병언 전 회장과의 유착 관계가 드러난 것은 없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사고수습 현장에서 배제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해경은 신임 정보수사국장에 김두석(53) 국제협력관을 임명했다. 해경은 또 의혹을 없애기 위해 자체 감찰팀이 이 국장을 조사할 예정이다. 구원파와 접촉하지 않았는지 통화 내역 등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이윤호(경찰행정학) 교수는 “이 국장이 세월호 사고에 관여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 해경”이라며 “그런 해경이 감찰해서는 의혹이 해소될 수 없으므로 제3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97년 8월 세모그룹 부도 때까지 7년간 이 회사 조선사업소에서 일했다. 구원파를 믿게 되면서 세모에 취직했다. 회사 연구비 지원을 받아 그해 부산대 조선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3개월 뒤 해경에 특채됐다. 당시 해경은 조선공학 박사인 이 국장의 이력을 보고 조함기획부(현 경비함정사업부) 계장으로 발령했다. 주로 해양경비정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다.

 이 국장은 2003년 1월 발족한 ‘해경 발전기획단’에서 일한 게 계기가 돼 총경으로 승진했다. 당시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공직사회 혁신을 강조하자 해경에도 발전기획단이 생겼다. 해경 직원들에 따르면 이 국장은 해경발전기획단의 조함기획계장으로 일하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국장은 2004년 12월 총경으로 승진해 해경 혁신기획단장을 맡았다. 함정 개발을 담당하기 위해 특채된 전문기술자가 해경의 틀을 바꾸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군산·여수해경서장을 지낸 뒤 다시 해경 혁신단장을 맡고 창의성과담당관도 역임했다. 총경 승진 7년 뒤인 2011년 2월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2012년 7월 정보수사국장이 됐다. 정보수사국은 해상 범죄와 치안을 총지휘하는 곳으로 해양경찰청 본청 6개국 중에 가장 중요한 자리로 꼽힌다.

 정보수사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사고에 간여하게 됐다. 경상대 이명규(해양경찰시스템) 교수는 “사고의 중대성을 감안했을 때 이 국장이 애초 스스로 세모에서 일했던 이력 등을 밝히고 보직에서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세모에서 일한 경력이 공무원근무상황관리시스템에 올라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러 감추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구원파 신도였던 적은 있지만 해경에 몸담게 된 뒤부터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구원파와 연락을 아예 끊고 지내 오히려 그쪽에서 나를 배교자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97년 박사학위 논문 후기에 “면학의 기회를 만들어주신 ㈜세모 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서는 또 “세모그룹에서 근무할 당시 말단 대리여서 유병언 전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감사의 글은 당시 그 회사에 근무해 예의상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과 함께 근무했던 해경 관계자는 “그가 구원파였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이 국장은 해경 신우회(기독교인들의 모임) 소속으로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매주 수요일 점심 때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보고 인성도 좋은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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