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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공직 적폐 1호는 '나와바리'다

이규연
논설위원
“나와바리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류 깡패세계를 흥미롭게 파헤친 영화 ‘넘버3’(1997년)에 나오는 명대사다. 김우중의 베스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패러디한 말이다. 영화는 나와바리(관할구역)를 놓고 벌이는 치졸한 암투를 다룬다. 나와바리는 ‘새끼줄을 쳐서 경계를 정한다’는 뜻의 일본말이다. 조폭에게 나와바리는 힘의 원천이다. 영업수입과 충성심이 여기에서 나온다. 남의 나와바리를 넘보려면 죽음을 건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이 조폭 은어가 공직사회를 설명할 때 종종 쓰인다. 관료는 철저하게 담당업무를 챙긴다. 틈만 나면 그 영역을 넓히려 한다. 생색나지 않는 업무는 다른 데 떠넘기려 한다. 취재기자를 하면서 지켜본 관료사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나와바리다. 세월호 침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공직자는 나와바리 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세월호 사고 초기로 돌아가보자. 해군의 최정예 구조대원 19명이 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투입되지 않았다. 관할권을 가진 해경이 해군을 통제했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이를 두고 해경이 평소 자기 나와바리에 있던 민간 잠수업체 ‘언딘’에 우선 잠수권을 챙겨주기 위해 해군을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경은 “언딘에 노련한 잠수사가 많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의 가슴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많은 구조대를 투입할 방도를 찾았어야 했다. ‘언딘’과 민간 잠수사 사이의 논란은 또 어떤가. 한 민간 잠수사가 “‘언딘’이 자기 관할임을 내세워 시신 인양을 양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방송에서 폭로했다. ‘언딘’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추가 증언이 나오는 상황이다.



 시신 앞 ‘관할권’ 다툼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있었다. 초기 늑장 대응의 가장 큰 원인도 따지고 보면 나와바리 때문이었다. 첫 신고는 해양수산부가 맡는 제주 해상교통관제(VTS)센터로 들어왔다. 정작 사고해역을 책임지는 진도연안VTS센터는 11분 뒤에야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했다. 진도센터는 해수부가 아닌 해경 소속이다. 둘 사이에 원활한 전파가 이뤄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의 운명을 가른 11분을 이렇게 허비했다.



 애초 VTS센터의 관할권은 해수부에만 있었다. 2007년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를 계기로 육지에 인접한 연안관제센터가 해경의 나와바리로 넘어갔다. 당시 총리실은 해상교통관제권을 모두 해경에 주는 안을 제시했지만 부처 갈등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한 해양 전문가는 “해수부(당시 국토해양부)는 해경이 자기 관할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두 기관 사이에 결정적인 앙금이 생겼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 김모(제주 거주)씨의 증언 역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는 4월 26일에 방영된 JTBC 시사프로 ‘다큐쇼’에서 배가 침몰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고 전화를 세 번이나 걸어야 했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나는 대로 119로 전화했다. ‘배가 물로 들어가고 있다. 신고 접수된 게 있느냐’고 묻자 자신들은 육지 관할이어서 모른다고 했다. 몇 마디 더 나눴지만 시간만 지체될 것 같아 빨리 끊고 112로 전화했다. 이번에도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몇 마디 더 나누다 해양경찰 관할 122를 알게 됐다. 세 번째 전화를 해 겨우 신고할 수 있었다.”



 공직사회에서 관할권 분할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해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조폭 세계 같은 나와바리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 나와바리만 챙기면서 국민은 안중에 없다면 그런 나와바리는 회수돼야 마땅하다. 적폐 1호를 꼽는다면 나와바리다. 국가개조 수준의 고강도 개혁을 한다면 끔찍하리만큼 견고한 나와바리 근성부터 깨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일부 공직의 모습은 한 줄로 요약된다.



 ‘나와바리만 넓고 할 일은 안 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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