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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패망은 부패 관료제 탓, 권력 카르텔 만들어 이권 독점"

이정식 교수
조선은 왜 망했을까. 조선이 근대적 개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 침략으로 개혁이 좌절되고 결국 패망했다는 식으로 흔히 설명되곤 한다. 내부의 오류는 없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이정식(83) 명예교수(겸 경희대 석좌교수)는 관료제의 폐단을 조선이 패망한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관료제 그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조선 초기 과거제를 통해 우수한 관리를 선발하며 비교적 공정한 관료제가 유지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변질됐다. “소모적이고 배타적인 당쟁과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지적이다. 요즘 말로 하면 ‘권력의 카르텔’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최근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문제점이 도마에 오른 오늘의 시점과 겹쳐져 새삼 새롭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관료 사회의 특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혁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관료 사회의 폐단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나라가 융성할 수 없다. 그것이 조선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희대 서울캠퍼스. 특강에 나선 이 교수는 조선과 청이 멸망한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당초 특강 주제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독립사상’이었지만 청중의 이목은 당시 국제 정세와 국가의 멸망을 설명하는 부분에 집중됐다.

 이 교수는 정치학자이자 역사가로 『한국공산주의운동사(Communism in Korea)』 『한국민족주의운동사』 등의 저작을 펴내며 이미 1970년대 국내외 학계의 명성을 얻었다. 그의 스승인 로버트 스칼라피노(1919~2011) 전 UC버클리 교수와 함께 펴낸 『한국공산주의운동사』로 74년 미국정치학회 최우수 저작상을 받은 바 있다.

 이 교수의 연구 경향은 그동안 주로 일제 강점기와 해방전후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이 교수의 특강은 그의 관심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조선시대로 소급해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관료 사회의 폐단과 소모적 당쟁이다. 그는 “일본의 강압과 침략은 당연히 비판되어야 하지만, 조선에 어떠한 개혁의 노력이 있었으며 그런 개혁은 왜 실패했는지 내부의 잘못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조선시대에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감사기구도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잘돼 있어도 이를 어떻게 시행하느냐가 국가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강조하며 “1854년 무렵 암행어사 박규수가 관료들의 부패상을 고발하면서 개혁의 꿈을 키워간 데서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의 과거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가문에 독점되는 일이 발생하고 부패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쟁도 조선 국력의 쇠퇴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교수는 "당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당파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는 우수한 사람이라도 당파가 같지 않으면 채용할 수 없고 다른 당파의 아이디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모든 기준이 당파의 이익만을 최우선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고 말했다.

 소모적 당쟁과 관련해선 인조반정(1623년)을 예로 들었다. 인조반정은 당시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서인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이후 붕당정치가 본격화돼 당쟁이 치열해지고 왕권이 약해졌다. 외교적 중립을 추구하던 광해군의 정책은 폐기되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가 강화된다. 이 교수는 “광해군은 중화(中華)사상과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나 독립적 외교 노선을 추구했던 인물”이라며 “주자학과 명나라를 존숭하기보다 조선의 존망(存亡)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광해군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마다 한 차례 경희대에서 특강을 하곤 한다. 2011년 열렸던 그의 한국 현대사 특강은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라는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19세기 말 대한제국 초기에 등장하는 독립사상의 뿌리를 조선시대에서 찾아보려 했다. 실학자 홍대용(1731~1783)에 주목했다. 주자학과 중화사상에서 벗어나려는 홍대용의 개혁정신에서 독립의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박지원을 거쳐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기의 서재필로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이정봉 기자

◆이정식=1931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한국 독립운동사와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 33년 만주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냈고, 48년 북한으로 귀환했다가 1·4후퇴 때 남하했다.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 UC버클리 대학원에서 ‘운명적 스승’ 스칼라피노 교수를 만났다. 『한국민족주의운동사』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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