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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격랑, 시로 위로 받았으면 …

등단 45년 이시영 시인은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자 한없이 어색해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그의 시집은 세상의 따스한 순간을 놓치지 않은 시인의 예리한 렌즈가 포착한 수많은 빛나는 순간의 기록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자 빛나는 순간을 낚아챈 시어가 서정을 울린다.

 옛 기억을 더듬는 그의 ‘오래된 노래’는 긴 겨울밤 온돌 위에서 꾸벅꾸벅 졸며 듣는 듯 나른하다.

 올해 등단 45주년을 맞는 이시영(65) 시인의 신작 시집 『호야네 말』(창비)은 따뜻하다. 짧은 서정시의 넓은 행간을 채우는 온기가 포근하게 오래 남는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나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처럼 ‘현실’에 방점을 찍었던 시집들을 떠올린다면 이번 시집의 시어와 분위기는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센 시만 써서 ‘반체제 작가’로 찍힌 듯해, 나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려고. (웃음) 세상을 불온한 시선이 아닌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한 거에요. 나이도 먹고 했으니 잔잔하게 내면을 보여주는, 내 안에 자연스레 고이는 정서를 표현한 거죠.”

 그런데 시집 출간 즈음에 벌어진 참담하기 그지없는 ‘세월호’ 사건 때문에 잔잔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금 그의 마음엔 격랑이 일지만, 그의 시는 위로로 다가온다.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위로는 공감하는 능력이고, 감수성은 나를 적게 하면서 세계와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마음의 보폭을 맞추려는 그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미물에 귀기울였다. 덕분에 ‘양들이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 귀가하고 있습니다/곧, 저녁입니다’(‘곧’)와 ‘이 아침에도 다람쥐들은 재빨리 능선을 넘고 있겠구나’(‘첫눈’) 등의 짧은 시에는 ‘찰나의 순간’이 살아 있다. 그가 좋아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처럼.

 “짧은 시는 사진과 닮았어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 않게, 적절한 시점과 순간을 포착하는 거죠. 살아 있는 순간 삶의 활력을 표현하는, 생동하는 시에요.”

 한두 줄에 불과한 그의 짧은 서정시는 언어 과잉의 시대를 향한 죽비 같다. 그렇다고 시집 전체가 짧은 시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고향 마을의 사람들이나 그가 기억하는 문인들의 모습은 산문시 같은 ‘이야기시’로 담아냈다.

 “짧은 시와 긴 시를 오가는 건 서정과 서사를 오가는 거에요. 사진을 찍을 때처럼 그저 앵글이 다를 뿐이죠.”

 서라벌 예대 1학년이던 1969년 등단해 시인으로만 45년을 살아온 그는 “시인으로 후회는 없다”고 했다. 문학판에서 좋은 이들을 만났고, 무엇보다도 시인으로 자아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찰과 반성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 결정체인 그의 시가 이번처럼 서정적일지, 예전처럼 날 선 목소리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늘 위로일 것임은 분명하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시영=1949년 전남 구례 출생. 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등.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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