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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관습의 폭력

스페인은 711년부터 1492년까지 거의 800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은 타 종교에 관용적이어서 모두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공존하였다. 스페인의 가톨릭교도들은 국토수복 전쟁, 즉 레콩키스타도르 전쟁을 700년 넘게 계속했고, 이교도인 이슬람과의 전쟁을 치른다 하여 십자군원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끈질겼던 이 전쟁에서 승리한 가톨릭교도들은 이교도에 매우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국외로 추방한 것이었다. 스페인 문화 속에는 반(反)이슬람, 반유대인 정서가 짙게 녹아있지만 너무 오래 생활화되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스페인 북부에 카스트리요 마타후디오스(Castrillo Matajud<00ED>os)란 인구 64명의 작은 마을이 있다. ‘마타후디오스’는 ‘유대인을 죽여라’(mata=죽여라, jud<00ED>os=유대인)란 뜻인데 이와 같은 반유대, 반이슬람적 어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정서는 16세기부터 3세기 동안이나 이교도를 잔혹하게 박해했던 종교재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스페인 사람들은 ‘마타후디오스’란 음료를 마시는데 이는 포도주에 레몬주스를 섞어 단숨에 들이켜는 부활절 전통 음료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의 보호성자는 야곱, 즉 이아고로 성 야곱은 스페인말로 ‘산티아고’가 된다. 그런데 ‘산티아고 마타후디오스’(성 야곱이시여, 유대인을 죽이소서)라는 도시가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에도, 미국 오하이오주에도, 쿠바에도 버젓이 존재한다.

 이 이름을 바꾸자고 이곳 시장이 나섰다. ‘마타=죽이자’의 a를 o로 고치면 ‘모타후디오스’ 즉 ‘유대인의 언덕’이 되니 마을 문장에도 들어가는 ‘유대의 별’에도 맞는다는 것이고, 아니면 이 마을에서 태어난 유명한 작곡가의 이름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오는 5월 26일 투표로 마을 이름 변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왜 갑자기 수백 년간 사용해온 마을 이름을 바꾸자고 하는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관습화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작은 것이라도 ‘올바르지 않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바꾸어야 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정신이다. 글로벌화란 인류 보편적인 상식과 규범을 받아들이고 이에 어긋나는 우리의 것을 여기에 적응시켜 범세계적인 호환성을 획득해 나가는 것이지, 자기의 것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들만의 독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둘러보아야 한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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