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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색탐을 피하라 …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라파엘로(1483~1520)가 1509~1510년에 그린 ‘아테네 학당’. 그림 중앙에서 8시 방향으로 월계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에피쿠로스.

1992년 이탈리아에서 아주 먼 옛날에 나온 책이 느닷없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의 『선집(選集)』이다. 결혼식·생일 선물뿐 아니라 상(喪)을 당한 친지들을 위로하는 용도로도 각광받았다. 가톨릭 교회의 중심인 이탈리아에서 『선집』이 폭발적인 반응을 누린 것은 아이러니다. 『선집』은 ‘신(神)을 배제한’ 행복의 비결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행복이란 무엇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만큼이나 피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에피쿠로스만큼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역사상 없다. 『선집』은 100쪽도 안 되는 분량이다. 에피쿠로스의 글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사실상 그의 전집(全集)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집』이 담은 내용은 이렇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 쾌락은 행복의 동의어다. 쾌락을 얻고 고통을 피하는 게 행복이다. 고통이 없는 게 쾌락이다. 쾌락은 선, 고통은 악이다. 그렇다면 쾌락이란 무엇인가. 에피쿠로스가 정의하는 쾌락은 “몸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골칫거리가 없는 것”이다.

 그 어떤 쾌락도 그 자체로는 나쁜 게 아니다. 모든 쾌락은 같다. 하지만 쾌락은 욕망을 채우는 게 아니라 욕망을 이성으로 제압함으로써 달성된다. 욕망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정부동(平靜不動) 상태가 된다. 에피쿠로스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흔들리지 않게 되면 인간들 사이에서 신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한데 아타락시아의 적은 탐욕이다. 탐욕은 병이다. 특히 식탐(食貪)이나 색탐(色貪)은 금물이다. 지나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과음·과식, 음주가무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때만 좋다.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아파 후회하게 된다. 권력도 돈도 그때뿐이다. 오래가는 쾌락을 주지 못한다. 돈이나 권력 또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깬다.

 삶을 바꾸려면 욕망이 소박해야 한다(에피쿠로스의 식단은 간단했다. 보리빵, 치즈, 물, 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먹고 살았다). 또 욕망의 종류가 바뀌어야 한다. 우정, 자유, 수양, 철학적 성찰의 시간 같은 것들은 추구할 만한 쾌락이다. 돈·권력·명예 같은 ‘헛된 욕구’들과 달리 이것들은 ‘자연스러운 욕구’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조용하게 살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라”고 했다.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선집』의 영문판(왼쪽)과 한글판 표지.
 쾌락은 순식간에 고통으로 탈바꿈한다. 이를 막는 최고의 수단은 철학이다. 철학은 마음의 약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몸에서 병을 쫓아내지 못하는 의술이 아무런 쓸모가 없듯이, 영혼의 병을 쫓아내지 못하는 철학도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철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죽음의 철학’이 핵심이다. 당시 일부 철학자들은 모든 죽음에 대해 초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퍼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봤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공포와 걱정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통해서다. 고통을 주는 게 나쁜 것이다. 죽음은 고통을 줄 수 없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죽음이 고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과 조우할 일이 없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요, 죽음이 도착했을 때는 우리는 사라지고 없다.

 죽으면 끝이다.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그러니 20년 먼저 또는 늦게 태어났다고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일찍 세상을 뜨는 것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현명한 사람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선과 악은 감각에 달렸다. 감각이 없는 게 죽음이다.”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와 더불어 에피쿠로스는 고대의 대표적인 유물론자다. 에피쿠로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으며 우주는 물질과 빈 공간으로만 구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교조인 유물론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박사학위 논문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에 대하여』(1841)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에피쿠로스는 별로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종교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미신이나 신화뿐 아니라 종교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신(神)들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주의 탄생과 유지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신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상선벌악(賞善罰惡)에 관심이 없다. 내세가 없기에 사후 심판도 없다. 몸뿐 아니라 영혼도 원자로 구성됐다. 영혼도 물질이기에 죽으면 사라진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기독교 교리와 충돌하기 때문에 에피쿠로스 철학은 교회로부터 ‘사상적 탄압’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개에 중요한 한 축을 이뤘던 그가 부활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에피쿠로스 그리스 사모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별세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 기원전 306년 아테네에서 집을 한 채 사고 집의 정원에 학원을 세웠다. 그의 학원은 여성과 노예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최소한 파피루스 두루마리 300개 분량의 작품 40권을 집필했지만 대부분 실전됐다. 『선집』에 포함된 3편의 편지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편지에 영향을 줬다는 설이 있다. 72세 때 전립선염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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