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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 사람들 ⑩ 수줍은 많은 네팔 처녀 사비트르

자신의 몸보다 큰 땔감을 지고 걸어가는 사비트르




네팔 처녀의 저녁 초대 … 예비 사위 대접을 받다

사비트르 카르키(22)는 네팔 북서쪽에 자리 잡은 세계7위봉 마나슬루(8163m) 아래 자갓(1340m) 마을에 살고 있었다. 지난 2012년 12월의 어느날, 마나슬루 가는 길에서 그를 만났다.



사비트르를 만난 곳은 마을에 들어서기 전 언덕이었다. 십여 채의 집 지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전망대였다. 그는 전통 의상을 입고 쪼그려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작고 아담한 뒤태가 강물과 포개졌다. 제법 호기심을 유발하는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그의 옆으로는 산에서 끌어 모은 땔감용 나무가 한 무더기 놓여있었다.



“여기서 자갓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이미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진 때였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로워(Lower) 자갓이고, 그 너머가 자갓이에요. 금방이에요. 숙소는 정했나요?”



“숙소는 가이드가 정해요. 나는 몰라요.”



1 사비트르(맨 오른쪽)와 그의 가족들. 작은 집에 대식구가 살고 있었다. 2사비트르의 조카들.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외지인의 방문을 지켜봤다.


나무꾼치고는 정숙했다. 알고 보니 자갓에서 한나절 거리에 있는 피림(1570m)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날은 금요일, 네팔의 휴일 전날이었다. 그러니까 사비트르는 직장을 마치고, 걸어서 한나절이나 걸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산에서 땔감을 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착한 딸이네요”라고 한 마디 했다.



언덕에서 집까지는 1시간 가량 걸렸다. 사비트르는 자신의 몸뚱이보다 큰 땔감을 지고 묵묵히 걸었다. 선생님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칠라 치면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쩔 수 없는 수줍은 처녀였다.



자갓은 외지인이 묵을 만한 로지(Lodge)가 두 세 군데뿐이었다. 그 중 하나는 사비트르의 이모 내외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가이드는 다른 곳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 우리 집에 놀러와요. 우리 가족을 소개해줄게요.” 그는 살갑게 말하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 후 그의 집에 들렀다. 나이 드신 어머니와 큰 오빠 내외를 비롯해 언니, 미혼의 오빠 그리고 조카들까지 십수 명이 모두 나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큰오빠는 근처 중학교의 선생님이었으며, 형부는 네팔 북동부에서 제법 큰 도시인 고르카(Gorka)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나를 환대했다. 특히 사비트르의 노모(老母)는 직접 만든 네팔 전통 술, ‘창’을 대접했다. 가장 낙천적인 사람은 사비트르의 이모였다. 그는 내게 짓궂은 질문을 해댔다.



“우리 깐치(막내) 어때? 마음에 들어? 좋아?” 깐치는 사비트르를 말하는 것이었다.



“네, 좋아요. 맘에 들어요.” 이 말 밖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이모를 비롯한 대식구들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사비트르의 노모가 가장 좋아했다. 결혼 적령기의 딸을 가진 어머니의 입장에서, 나의 대답이 조금이마나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노모는 내가 술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다시 잔 가득히 술을 채우며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마치 예비 사위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날 그렇게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사비트르의 집에 들러 새 털신을 사비트르의 노모에게 건넸다. 노모는 두 손을 모아 감사의 표시를 했다.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수백 곳의 히말라야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마을이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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