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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기다리는 사람 바다에 없어 여객선에 승무원들만 탄 줄 알아"

세월호가 가라앉던 16일 오전 9시30분. 사고 지점으로부터 40㎞ 떨어진 전남 진도군 갈명도 인근에서 불법 어선을 단속하던 전남도 어업지도선 201호 단정(소형 보트)으로 “여객선 침몰 중, 인명구조 원한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박승기(44) 항해사는 즉시 사고 현장으로 배를 몰았다. 단속을 위해 어선에 올랐던 동료 1명을 태울 겨를도 없었다.

 최고 속력인 40노트(시속 70㎞)로 달려 오전 10시8분 현장에 다다랐다. 다른 곳에서 달려온 어업지도선 단정 207호와 함께 승객들을 구조했다. 이날 201호는 30여 명, 207호는 20여 명을 구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어업지도선의 활약을 담은 동영상이 29일 공개됐다. 전남도청이 이날 공개한 동영상은 사고 당일 오전 10시4분부터 21분36초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201호를 몰았던 박 항해사의 헬멧에 부착된 캠코더로 촬영했다.

 어업지도선 단정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70도가량 기울어진 상태였다. 박 항해사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다에 가득 찼을 줄 알았는데 눈에 띄지 않아 의아했다”며 “처음엔 승객 없이 승무원만 탄 여객선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배 뒤편 갑판에 나와 있던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단정 201호가 접근해서는 임종택(47) 기관사가 팔을 뻗어 구했다. 부근에선 해경 7인승 고무보트(고속단정)가 구조활동 중이었다. 해경 1명은 세월호에 올라 난간을 붙잡고 있던 승객을 구출하려 했다.

 2분 뒤 임 기관사는 밧줄에 의지해 아예 세월호에 올라탔다. 그러곤 4층 계단을 붙잡고 있던 반백의 남성을 구출했다. 3층 난간에 매달렸던 6명 역시 차례로 201호에 올라탔다. 승무원 3명까지 모두 9명. 정원(6명) 초과였다. 하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인근에 있던 진도군 행정선 ‘진도아리랑호’에 이들을 옮겨 태운 뒤 다시 세월호로 향했다.

 오전 10시12분, 세월호에 붙어 구조활동을 하던 해경 경비정 123정이 세월호에서 슬슬 뒷걸음질쳐 떨어졌다. 당시는 대부분의 승객이 1시간 전에 여러 차례 나온 “안전한 선내에 머물라”는 안내 방송에 따라 선실 안에 있을 때다.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승객들은 이날 오전 10시17분까지 가족·친지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해경은 “계속 경비정을 붙여놨다가는 기울어지는 세월호 밑에 눌려 함께 침몰할 우려가 있었다”고 물러난 이유를 설명했다. 경비정은 물러나고 해경 고무보트와 어업지도선 단정 201호와 207호만 직접 구조를 했다. 언제부턴지 어선 ‘피쉬헌터’호도 구조 대열에 합류했다.

 오전 10시15분이 되자 세월호는 거의 90도 옆으로 누웠다. “어, 배가 많이 기운다 ”라고들 소리쳤다. 갑판이 반쯤 물에 잠긴 상태에서 세월호가 기울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3분이 지나자 갑판이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고 우현마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201호 등이 다가가자 학생 30여 명이 우르르 배 밖으로 나왔다. 일부는 바다에 뛰어내리기도 했다. 몰려나온 이들 가운데는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안산 단원고 박호진(17)군도 있었다. 박군은 “애기요 애기”라며 여자아이를 구명조끼에 싸서 안고 나오는 모습도 포착됐다. 베트남 출신 엄마는 사망했고, 아빠와 오빠는 아직 소식을 모르는 권지연(5)양이었다.

 30여 명은 201호, 207호와 해경 고속단정, 그리고 피쉬헌터호에 구조돼 떨어져 있던 123정으로 옮겨졌다. 학생들을 내려준 201호가 황급히 뱃머리를 돌린 때는 오전 10시21분. 세월호는 이미 뱃머리 일부만 남은 상황이었다. 201호와 207호는 13분 동안 세월호를 5~7번 오가며 모두 50여 명을 구했다.

  박 항해사는 “구조에 참여하려고 대기하던 어선이 많아 세월호에서 탈출 안내만 이뤄졌다면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왜 그러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도=장대석 기자, 민경원·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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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