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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기념관 100일 만에 5만 돌파, 일본·북한·영국인 방문도 이어져

“중·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일 기자 "중·일 관계 악영향" 따지자
중국인 설계자 "동양평화 위한 것"

 “그렇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듯 이 기념관을 세운 것 역시 동양평화를 위해서입니다.”



 29일 낮, 중국 하얼빈역의 안중근기념관을 찾은 일본인 기자와 기념관 설계자인 쿵링파(孔令發)가 주고받은 설전이다. 11개 매체 소속의 일본 기자 20여 명은 “어쨌든 사람을 죽인 행위 아니냐” “예산은 얼마나 들었나” 등의 질문 공세를 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일본 초대 총리의 피살 현장이기도 한 이곳에 일본 기자들이 찾아온 건 중국 외교부가 외신기자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29일은 기념관 개관 100일을 맞는 날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의거 당일, 안 의사가 잠깐 머물렀던 귀빈실 공간에 마련된 기념관은 역사교육 장소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양싱룽(楊興龍) 부관장은 “100일도 안 되는 사이 관람객이 5만 명을 돌파했다”며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관람객 중에는 중국인이 60%, 한국인이 3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게 기념관 측의 설명이다. 방명록 접수대에 앉아 있던 안내원은 “그 사이 방명록을 8차례 바꿨다”며 “일본인 관람객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고 말했다. 북한인도 다녀 갔고 영국의 국회의원도 참관했다고 한다.



 관람객 단주잉(單九英·75)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기념관에 와 보니 그가 정말 영웅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의거 장소인 플랫폼을 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볼 수 있게 한 것이나 의거 순간인 오전 9시30분을 가리키며 멈춰 선 벽시계 등 기념관 외관과 전시물 내용은 그 사이 큰 변화가 없었다. 양 부관장은 “기념관 설립으로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연구도 더욱 활발해졌다”며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해 전시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하얼빈 교외의 731부대, 창춘 소재 지린성 기록보관소 등에도 외신기자들을 안내했다. 옛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지난 1월 항일 전적지와 2월 난징 대학살 기념관 등에 이어 중국 외교부가 세 번째로 기획한 ‘역사 공정’이다. 731부대 옛터에서는 일본군의 생체실험과 세균전 준비 등이 이뤄진 장소를 보존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기 위한 준비상황을 외신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동안 중단됐던 민간 교류와 지자체 교류가 재개되면서 중·일 관계가 해빙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역사인식에 관련한 대일 공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얼빈=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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