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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사랑해







“이놈들이 자기 방에서 꼼짝 않아도, 이름만 부르는데도 화를 내도, 별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요구를 해와도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잘 먹고 학교 잘 갔다 오는 것만으로 이놈들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은 충분히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을, 그래서 이놈들에게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을 이즈음 하게 됩니다.”

어제 대학 동아리 밴드에 저보다 14년은 선배이신 분이 쓴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ㆍ딸은 아빠가 집에 들어와도 본채 만채 하고 자기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는답니다. 어쩌다 마주쳐 몇 마디 물어보면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몰라’라는 답만 듣기 일쑤고요. 그럴 때면 사춘기 자식인데 참아야지 싶다가도 섭섭한 마음이 앞선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저 살아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네요. 세월호 사고로 죽거나 실종된 자식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요.

그리고 기사를 보니 2001년 9ㆍ11사태로 미국에서 불었던 ‘가족애 신드롬’이 지금 한국을 뒤덮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안부를 자주 묻고 평소엔 쑥스러워 잘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요. 그저 잘 자라주면 고맙다고요.

엄마가 되니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감기 걸려 기침을 하고 코를 그르렁 거리기만 해도 마음이 짠합니다. 저 조그만 게 얼마나 아플까.

다행히 고은양은 큰 병 없어 잘 자라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 3일간 신생아실에서 치료받은 걸 빼면요.

첫 회 <안녕하세요. 고은이 엄마에요>에도 썼듯, 고은양은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예정일 일주일이 넘도록 세상에 나올 생각을 않는 고은양을 유도분만하기 위해 병원으로 갔습니다. 배에다 각종 검사선을 연결해 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들이 달려왔습니다. 자궁이 수축할 때 고은양이 힘들어 한다고요. 좀 더 경과를 보자고 하는데 결국 다음날 담당 의사는 “자연분만을 더 진행하다가는 아기가 위험할 수 있다”며 제왕절개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기가 아파한다고 하자 모든 것이 제 탓으로 느껴져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의사도 이유는 모른다지만 많은 게 걸렸습니다. 임신 초기 임신인 줄 모르고 술 마신 거, 출산을 쉽게 하기 위해 운동해야 하는데 귀찮다고 거른 거, 조금이면 괜찮겠지 하고 일주일에 서너 잔씩 커피 마신 거…. 모든 게 다 미안했습니다.

‘내 배를 가르고 나온’ 고은양을 볼 새도 없이 고은양은 신생아실에서 3일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탓에 당장 움직일 수 없는터라 고은양을 보러 신생아실로 갈 수 없었습니다. 사진으로나마 확인하고 싶었지만, 치료를 위해 각종 줄을 주렁주렁 메달은 고은양은 다른 건강한 아기들처럼 간호사에 안겨 창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습니다. 남편이 찍어 온 사진엔 각종 의료 기기에 가려 고은양 머리만 겨우 보였습니다.

회진을 도는 의사에게 “아기가 왜 아픈거냐, 잘못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걱정할 필요 없다. 치료받으면 좋아진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더군요. 그런데 제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 같았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아기도 견디면서 치료받고 있는데 엄마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되느냐. 괜찮다. 엄마 잘못이 아니다”고 위로해 줬습니다. 엄마 잘못이 아니라지만 모든 게 엄마 잘못 같았습니다.

3일이 지나고선 고은양을 신생아실 창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5일 뒤에는 데리고 올라와 병실에서 안고 모유수유를 했습니다. 그저 건강히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습니다.

태어난 지 5달이 다 돼 가는 지금, 그때 그 감정은 어디 가고 고은양이 이유없이 칭얼대고 한밤 중에 울어제낄 때면 살짝 짜증이 납니다. 커서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그건 엄마가 알아서 뭐하게” 이러면서 방문을 쾅 닫아버리면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고은양이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시신이라도 찾았다”고 안도하는 실종자 부모님들께는 죄스런 마음이지만은요.

고은아 고마워. 사랑해.

ps. 어제 JTBC 뉴스에 나온 한 실종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열 달을 품어서 낳았는데, 한 달도 안 됐는데 인양을 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생존 가능성이 없는데 이젠 인양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던 제 마음이 너무 죄송합니다.

고란 기자

[사진 설명]

1 땀이 많은 고은양. 여름 고까옷 입고 외출.
2 엄마 아빠 편히 밥 먹으라고 주무시기까지 하는 효녀.
3 고은양, 엄마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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