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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무용수들 바흐의 선율이 되다

1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는 나초 두아토
“손가락을 하나만 펴요” “다리를 좀 더 밖으로”.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춤의 연금술사’ 나초 두아토(57)는 무용수들의 손가락, 머리와 다리의 미세한 각도까지 다듬고 있었다. 직접 무용수들과 얽히며 디테일한 동작을 매만져가는 모습은 지금 무대에 올라도 될 만큼, 아니 무대 위의 그를 꼭 보고 싶을 만큼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바흐의 선율을 따라 흐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오선지 위의 음표로, 바흐가 연주하는 악기로 변해가다 이윽고 음악 그 자체로 다가들었다. 가로로 길게 늘어선 군무는 분명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었지만, 건반 하나하나가 튕겨지며 음악을 이루듯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어느새 소리로 들려왔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 30년 만에 처음 도전한 전막 모던 발레 ‘멀티플리시티’(25~27일 LG아트센터)는 모던발레의 거장 이어리 킬리언의 후계자로 불리는 두아토에게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선사한 걸작이다. 2002년 스페인 국립무용단 내한공연 당시 두아토의 음악성에 홀딱 반한 문훈숙 단장이 “언젠가 유니버설이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심을 12년 만에 실천하게 됐다.

18일 입국해 마무리 연습에 한창인 두아토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은 연출하기 어려운 작품이라 현재 세계에서 서너 단체만 하고 있다”며 “공연권을 주기가 쉽지 않았지만 와서 보니 잘하고 있다. 유니버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집중력도 좋다”고 만족을 표했다.

‘멀티플리시티’는 지금껏 국내 발레단이 선보여온 모던 단편들과 달리 2막으로 구성된 2시간짜리 공연인 데다 바흐의 삶과 음악을 스토리라인 없이 다양한 상징만으로 엮어낸 대작이란 점에서 국내 발레팬들이 모처럼 모던 발레의 매력에 푹 빠져볼 기회기도 하다.

2‘멀티플리시티’ 중에서. Photo by Wilfried Hosl-Bavarian State Ballet
‘음악의 아버지’ 바흐 250주기를 앞두고 독일 전체가 들썩이던 1999년, 튀링겐주의 바이마르는 이례적으로 스페인 안무가 두아토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엄숙하고 경건한 바흐의 음악과 라틴 감수성 충만한 스페인 안무가의 만남이 결코 자연스러운 그림은 아닐 터. 두아토도 “처음엔 바흐 음악에 안무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바흐의 방대한 작품세계에서 23곡을 선곡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너무 위대해서 감히 손대지 못한 곡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위대한 음악을 내 더러운 손으로 건드리기 두려웠다. 머릿속으로 안무하면서 바흐와 계속 대화를 했다. ‘이 곡을 써도 화내지 않겠죠?’라고 조심스럽게 물어가며 힘들게 선택했다.”

그런 만큼 원곡은 최대한 지켰다. 2막 끝 부분, 바흐가 시력을 잃고 죽어가며 만든 미완성 푸가를 음이 끊긴 상태로 끝내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안무가들이 대부분 이 곡을 완성시켜 공연하는 데 비해 바흐의 음악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두아토의 선택이었다. 초기에는 서막과 에필로그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안무가가 바흐에게 창작을 허락받으며 시작해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줘 감사하다는 인사로 마무리함으로써 최대한 존경을 다하기 위한 구성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바흐를 전과 같이 들을 수 없다. 고요한 줄 알았던 바흐의 음악이 격정적으로 들릴 것”이란 문 단장의 말처럼, 두아토가 음악을 시각화하는 방식은 충격적이다. 칸타타 BWV 205의 화려한 음향과 함께 무용수들이 바흐의 지휘에 빵빵 터지는 오케스트라 자체가 되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서곡이 흐를 때 여자 무용수의 신체가 바흐가 연주하는 첼로가 되는 등 그가 만드는 장면들은 참신하되 어렵지 않고 직관적이다. 바흐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를 버리고 자유로운 감성으로 재해석한 덕이다.

두아토는 80년 스톡홀름 쿨베리 발레단에서 데뷔하자마자 네덜란드 댄스시어터의 이어리 킬리언에 의해 전격 발탁돼 주목받기 시작했고, 88년 네덜란드 댄스시어터 상임안무가 자리까지 이어받아 명실공히 ‘킬리언의 후계자’가 됐다. 하지만 킬리언의 잔향이 느껴진다는 지적에는 고개를 저었다. “9년 동안 함께 일했지만 이미 24년 전에 ‘이혼’했다. 평생 킬리언의 팬텀이 쫓아다니겠지만, 나는 나만의 색깔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스승에게서 클래식 테크닉에 기반한 현대적 언어와 음악지향적 태도를 계승하면서도 지중해 특유의 낙천적 정서가 더해진 그만의 개성이 신성한 바흐로부터 에로스를 끌어낸 것이다.

스페인 국립무용단과 러시아 미하일롭스키 극장을 거쳐 올 8월부터 베를린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간다는 그는 좋은 안무자의 조건을 묻는 물음에 “나는 원해서 된 게 아니라 운명에 끌려갔을 뿐”이라면서도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먼저고, 춤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답했다. “혼자서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연습실에 영감만 갖고 들어간다. 장님처럼 더듬거리다 보면 무용수들의 도움으로 결국 ‘집’을 찾게 된다. 발레 안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늘 다음 작품이 두렵고 불확실해 언제까지나 내가 아마추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절대 마스터하지 못하기에 죽도록 배워야 할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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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