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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이라고? 해석도 집중도 내 식대로 할 뿐”

1~2년 전부터 서울패션위크에 나타나는 진풍경 하나. 아이돌 그룹 못잖은 남자 모델들의 인기몰이다. 쇼장 안팎에선 그들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따라다니는 여학생 무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패션쇼 맨 앞줄에 앉은 스타들만큼이나 워킹하는 모델들에게 카메라 세례가 쏟아진다. 혜박·한혜진·장윤주 등 여자 모델들에 이은 남자 모델들의 전성시대다.

김원중(27)은 이런 변화를 이끄는 대표주자다. 2009년 데뷔해 동양인 모델 중 처음으로 프라다 무대(2013년 S/S)에 섰다는 화려한 이력, 게다가 국내의 주요 패션쇼장과 패션잡지에서 그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CF에 이어 케이블 방송 패션 프로그램에서 MC도 맡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모델킹’ ‘킹원중’이라고 부른다. 대체 누구길래, 뭐가 다르길래.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머릿속엔 물음표가 넘쳐났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며 “평소처럼 하고 오라”는 말을 해뒀다. 늘 완벽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꾸며지는 모델의 민낯, 그러니까 쇼장 밖에선 지극히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평소’는 ‘평범’과 다른 말이었다. 흰색 반소매 티셔츠에 펑퍼짐한 검정 바지,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입고 나타난 그는 저 멀리서부터 튀었다. 1m89cm의 훤칠한 키에 비현실적으로 작은 얼굴을 그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아무거나 걸쳐도 되니 좋겠다.
“아니다. 정말 아무거나 걸쳐봤는데 안 되더라. 후줄근한 옷은 누가 입어도 후줄근하고, 슈트는 사이즈가 안 맞으면 웃겨보이고 그렇다.”

-거울 앞에서 만족스러운가.
“훌륭하다. 자주 느낀다. ‘와~ 진짜 훌륭하구나’라고. 스케줄이 많아서 피부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몸은 만족한다.”

-몸 관리는.
“운동은 전혀 안 한다. 그래서 술배도 있다. 담배도 하루 한 갑 넘게 피운다. 원래 몸무게가 68~70㎏이 딱 좋은 상태인데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60대 초반으로 확 빠졌다. 이제는 근육을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답을 해놓고 그는 인터뷰에 동행한 소속사 대표(앨컴퍼니 정진희 대표)에게로 눈길을 줬다. “누나(정 대표를 이르는 호칭)한테 혼날 것 같다”고 했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정 대표는 “원중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화법이 오해를 살까 봐 인터뷰를 잘 잡지 않는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남다른 신체조건을 지녔지만 모델이 될 생각은 애초 없었단다. 꿈은 디자이너였다. 제대 후 의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매니저에게 제안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군 복무 때도 모델 출신의 군 부사관이 해보라고 부추기던 일이었다. ‘비싼 옷, 좋은 옷을 입어보는 것도 디자이너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이 되고, 그걸 공짜로 실컷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마음을 먹었다.

-막상 해보니 어땠나.
“워킹 배울 때 ‘분리수거’라는 소리 들었다. 쓰레기라는 얘기다. 너무 못하니까 혼도 많이 났고. 어느 날 스타일리스트인 채한석 형이 나를 조선희 포토그래퍼에게 데리고 갔다. 개인 사진이나 한번 찍어 보라는 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 실장님은 최고 사진가 아닌가. 카메라 앞에 섰는데 다행히 조 실장님이 날 마음에 들어 했다. 겁대가리 없이 하라 그러는데 정말 그렇게 했으니까. 나한테 나사를 풀어 준 분이다.”

그러면서 김태은 포토그래퍼를 두고는 ‘나사 조이는 법을 알려준 분’이라는 얘기를 보탰다. 고개 각도나 팔과 발 동작 같은 걸 하나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포즈만이 아니라 모델에게 예의범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줬다는 의미였다. “신인이 가질 만한 기회가 아닌데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렇게 3~4개월 드문드문 찍다가 한 6개월 만에 소위 뜬 거다.”

마침 전성기를 맞던 모델 김영광이 연기자로 빠지면서 딱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던 시점. 그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평소 열등감이었던 양볼의 주근깨는 되레 매력 포인트로 인식됐다. “주근깨 있는 아이가 잘생긴 건 아니지만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어중간한 느낌? 이런 걸 신기하게 보더라.”

-기존 모델이랑 뭐가 달랐던 건가.
“신체적으로 딱히 훌륭한 건 없었다. 1~2년차에는 나도 당연히 촌스러웠고. 하지만 마른 몸의 모델들이 좀 더 확실하게 강조가 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건 맞다. 남자 모델에 대해 ‘그냥 몸이 좋다’가 아니라 남다른 이미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지금껏 들었던 특급 칭찬은.
“이상한 거 걸쳐놔도 평타는 친다는 말을 꽤 들었다. ‘컬렉션에서 버릴 옷은 김원중한테 입히면 산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게 더 기분 좋다. 예쁜 옷이야 제 옷장에 얼마든지 많지 않나.”

3월에 열린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섰던 김원중. (왼쪽부터)로리엣, 맥앤로건, 문수권, 김서룡옴므, 레이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이후 1년 반. 모델 일이 한 번도 끊기지 않았고, 그걸 당연하게 찍었다. 하지만 문득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싶었다. 회의감도 밀려왔다. 모델, 아니 남자 모델들이 한 번쯤 겪는 슬럼프였다. 2012년, 돌파구로 해외 무대를 찾았다. 무작정 파리로 떠났다. 다섯 군데 에이전시를 찾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컬렉션 모델을 뽑는 시기가 이미 끝난 탓이었다. 혼자 밀라노로 배낭을 짊어지고 기대 없이 떠났고, 거기서 에이전시 계약을 하고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기대도 없던 프라다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펑펑 울었다”면서 잠시 당시의 감회를 떠올렸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요즘 해외 활동은 뜸한가.
“개인적 성향 자체가 외국에 오래 못 있는 것 같다. 외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이방인이란 생각이 계속 들고. 그러니 일할 때만 딱 가고 금방 들어오고 그렇게 된다. 큰 쇼를 하는 건 좋은데 동시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편하게 할 수 있는 국내로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벌써 꺾였다는 얘기도 나오는 건 뭔가.
“솔직히 해외 활동이 적으니 꺾인 것도 있고, 꺾은 것도 있다.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이라 선택의 문제였다. 하지만 자라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협업 제안을 해오기도 한다. 이런 게 내게 해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남자 모델은 수명이 길어 봐야 1~2년이라는데 그는 4년째 정상에서 ‘버티고’ 있다. 비결을 물으니 그는 잠시 생각하다 답을 내놨다. “딱 까놓고 말하면 멍청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멋만 내고 하루하루 즐기는 캐릭터가 아니라 촬영에 대해 해석력과 집중력이 좀 있다. 자존심도 꽤 센 편이고.”

함께 일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그걸 스태프들과 공유하다 보니 방송(온스타일 ‘겟 잇 스타일’)을 해보겠느냐는 제안도 받게 됐다. 연예인은 아닌데 어떤 캐릭터가 잡히니까 그 자체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게 그 나름의 분석이었다.

-다른 남자 모델처럼 배우는 안 하나.
“난 모델이지 연예인은 힘들 것 같다.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는 공인이 된다는 게 감사하지만 불편하다. 지금도 솔직히 길에 다니면 알아보는 분이 많다. 같은 방송을 해도 배우의 길을 걷진 않을 거다.”

-그럼 은퇴 대비는 어떻게 하나.
“87년생 모델 친구들과 87mm라는 쇼핑몰을 열었다. 이제는 직접 디자인을 하고 해외 비즈니스도 잘 되고 있다. 솔직히 김원중이 하는 쇼핑몰이라는 게 플러스 요인인데, 옷만큼은 부끄럽지 않고 남들이 사고 싶은 걸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모델 일과 비즈니스를 구분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관둘 생각이다.”

인터뷰 전 그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4차원’이란 단어였다. 하지만 한 시간 대화에선 그런 생각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 근거를 물었다. “평소엔 무척 산만해서 얘기하다 갑자기 담배 피우러 가고 뭐 그런 식이다. 사무실에서 제가 좋아하는 한 곡만 몇 시간씩 틀어서 사람들을 좀 미치게 만들 때도 있다. 방송에서도 연출이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일 거다. 그런데 오늘 좀 차분하다. 그냥 이 분위기를 타는 거고, 내 얘기를 제대로 하고 싶었으니까. 나만의 해석과 집중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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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