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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위안부 발언은 한·일 화해 위한 ‘절충수’

26일 오전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연합방위태세 현황을 보고받기 위해 한·미 장성들의 박수 속에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한·미 정상의 공동방문은 1978년 연합사 창설 이래 처음이다. [뉴시스]
25~26일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을 다녀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는 ‘일본’이었다. 당초 일본만 방문하기로 했다가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9년 취임 이래 네 번째로 방한한 그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끔찍하고 지독한(terrible and egregious)”이란 표현을 쓰며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동안 미국 정부 차원에선 여러 번 나온 얘기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위안부를 ‘성노예(sexual slave)’로 규정하며 비난한 이래 미국은 이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반(反) 인권범죄”란 입장을 굳혔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당일 공개석상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판한 건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일본으로선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정상은 회담장에서도 한·일 관계에 대해 기자회견 때의 발언과 비슷한 맥락의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선 한·일 공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럴 필요성은 알지만 (일본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한쪽에서만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란 취지로 박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담에서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성의 있는 해결을 위해 힘쓰겠다는 등 종래 일본 정부의 약속들이 진정성 있게 실천되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이에 이해를 표시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고강도 위안부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한·미 관계를 평가하는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은 전직 고위 외교관은 “회의 도중 미국의 전직 고위 국무부 관리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 밝혀야 한다’는 질문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100번 넘게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그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 직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경협을 환영하지만 한국의 안보 기초는 미국’이라고 언급한 것도 서울에 대한 워싱턴의 우려와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불만은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졌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된 점”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도 26일 중앙SUNDAY에 “지금 한·미 관계는 좋고 한국의 대중 접근도 그 자체로선 미국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된 상황에선 한·미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또 한·중 관계가 (미국에) 우려스러운 수준이 아니어도 미국은 한국의 대중접근을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구도를 한국이 깨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천영우 아산정책연구원 고문도 “미국은 현재 한·미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한국이 안보 이해가 일치되는 일본과는 거리를 두면서, 안보 이해가 대립되는 중국과는 밀착하는 양상이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한 기간 중 강도 높은 위안부 비판을 통해 한국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안보를 비롯한 과거사 이외의 현안에선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 미국의 우려를 씻어주기를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한국이 요구해 온 전시작전권 이양 시점 재검토에도 합의하고, 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과 함께 한미연합사령부를 찾았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위로를 전했고, 조선어보 등 우리의 문화재를 반환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한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도 한국이 한·미·일 관계 복원에 나서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대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필요를 안게 됐다. 소식통들은 우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조만간 재개되고, 그 밖의 현안에 대해서도 여러 형태의 협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일 협의가 확대되려면 일본이 (과거사 등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한국의 지적에 미국이 견해를 같이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에 대해 과거사 입장 변화를 강하게 주문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엔 그런 배경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한국이 고려 중인 방안은 한·미·일 3자 협력의 확대다.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한·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열거나 한·일 정보교류협정을 한·미·일 정보교류협정으로 대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실상의(virtual) 한·미·일 3각동맹’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대한 절충안인 셈이다. 또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일본의 태도변화를 계속 촉구하되, 중국과 연대해 일본을 공격하는 구도는 피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한·미·일 공조 약화 우려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상적으로 일본과 충돌하는 측면은 우리와 중국이 같지만 과거사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본과의 양자관계 속에서 푼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하루 전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에도 시 주석과 통화했다.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이는 ‘통일기반 조성외교’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중국의 협조를 구해야 할 필요가 날로 커진 데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동북아에서의 진공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균형외교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은 한국의 이 같은 균형외교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일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전제가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또 다른 부담은 대미 무역흑자 조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AT)이 발효된 이후 지난 2년간(2012년 3월~2014년 3월) 한국의 대미 흑자는 366억 달러로 발효 이전 2년간의 흑자(220억 달러)보다 146억 달러 늘었다.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는 공화당과 재계로부터 “무역적자를 늘리려고 한국과 FTA를 체결했나”라는 공격을 받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주최한 한·미 재계 간담회에서 한국 기업 총수들에게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촉구했다. 또 “한·미 FTA의 결실을 극대화하려면 공정경쟁이 가능하게끔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해 한국의 대미 무역장벽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그동안 원산지가 미국인지 아닌지를 놓고 한·미 간에 갈등을 빚어온 미국산 자동차 부품과 IT 관련 기기, 오렌지주스액 등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발행한 원산지 증명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이 그 정도 조치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이후 양국 통상마찰이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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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