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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선 ‘한국, FTA로 미국 이용해 먹는다’ 불평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26일 마무리됐다. 한·미 동맹을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linchpin)으로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양국 정상회담의 의미가 크다. 대북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정상은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더 많은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 빈틈없는 공조를 확인했다.

그러나 작금의 한·미 관계에 대해 미국 전체가, 특히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를 공격하는 보수파들까지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한·미 관계에서 짚어 봐야 할 다른 차원의 문제다. 때마침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직전 미 보수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에드윈 퓰너(사진) 박사가 아산정책연구원의 초청으로 서울을 찾았다.

중앙SUNDAY는 24일 그를 만나 한·미 관계와 미국 정치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퓰너 박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몇 가지 아쉬움을 표시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신뢰 상실과 함께 민주주의의 원칙인 타협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면.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박 대통령은 그간 동북아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본다. 더불어 한국의 중요성과 가치를 대외에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다.”

-아쉬운 점은.
“국내 정치를 단호하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미국을 이용해 먹고 있다’는 불평이 워싱턴에서 나온다. 북한 인권 문제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난번 유엔이 북한 인권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자유로운 한국과 억압받는 북한을 극명하게 비교해 전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대로 활용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 기대대로 안 되면 절망 느껴
-한국 정치가 고칠 점이라면.
“1970년대부터 한국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한국인 친구도 많다. 이들을 쭉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한결같이 모든 일에 낙관적이라는 사실이다. 가정 문제건, 국가와 관련된 사안이건 늘 미래를 밝게 보고 모든 게 잘될 걸로 생각한다. 이런 사고 방식은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낸다. 요즘 미국 호텔에 가 보면 방마다 LG의 TV가 설치돼 있다. 현대차는 최고의 외국차로 대접받는다. 이런 게 다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건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기대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한국인들은 크게 실망하거나 심지어 절망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어 인간에겐 원죄가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원죄가 있는, 따라서 부족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매사를 완벽하게 할 수 있겠나.”

퓰너는 77년부터 36년간 헤리티지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2013년 퇴임할 때까지 9명이던 직원을 282명으로 늘렸다. 20만 달러였던 예산도 7700만 달러로 확충했다. 보수적 싱크탱크의 최고봉이라는 헤리티지재단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셈이다. 이런 수완을 인정받아 그는 2011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내 보수파 최고 실력자 7명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문제는.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 개혁 과정에서 의무 가입시기를 멋대로 3월 말에서 4월 중순으로 바꿨다. 법률로 바꿔야 하는 사안인데도 말이다. 1월부터 하겠다는 걸 60일이나 늦춰 3월부터 시행하기도 했다. 또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도 저버렸다. 의보 개혁 법안이 통과될 때 상·하원 모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표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제대로 검토도 안 한 채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다. 2010년 당시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통과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까지 했다. 이러니 어떻게 오바마 행정부를 믿겠나.”

정부 투명성, 법으로 보장해야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달라졌다는 얘긴가?
“과거 워싱턴 의사당에서 정치인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싸우기도 했지만 미국 정치엔 협상과 타협의 전통이 있었다. 미 의회가 상·하원으로 돼 있는 건 법을 만들 때는 지극히 신중히 해야 한다는 선조들의 믿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상원을 뜨거운 물에 데지 않도록 고안된 ‘찻잔 접시’로 비유했다. 하원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안건이나 결정을 상원에서 한 번 더 거르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거다. 이 과정에서 물론 여야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또 한 번 숙고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미국 정치인들은 반대 당 의원을 동료가 아닌 적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 같다. 전혀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때에는 인권법이 초당적 지지하에 만들어졌다.”

-왜 타협하지 않는가.
“SNS 등으로 인해 극단적인 의견이 마구 퍼져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증오감이 증폭되는 것 같다. 아울러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의회 시스템으로 인해 결정되는 사안의 이권과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과거보다 타협하기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원칙은 뭔가.
“내가 생각하는 건 네 가지다. 우선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space)’이 보장돼야 한다. 9·11 이후 테러리스트의 자금줄을 막기 위해 금융 관련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졌다. 중소은행으로서는 맞추기가 불가능해 줄줄이 문을 닫는다. 미국 시민들로서는 지역 금융회사들을 이용할 수 없어져 큰 손실이다. 둘째로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하고 모든 이는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셋째는 정부와 의견이 다른 대안 기관들(alternative institutions)이 제대로 존재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의 투명성이 법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오바마가 이를 안 지킨다는 건가.
“오바마 측은 자신들과 입장이 다른 단체를 옥죄고 있다. 공화당 내 강경파로 알려진 티파티가 대표적이다. 티파티에 대한 세금 우대를 철폐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내가 몸담았던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도 있지만 미국에는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 국방부가 지원하는 랜드연구소 등 각양각색의 싱크탱크가 있다. 어떤 정파와 맞지 않는다고 누르는 건 곤란하다. 이들로 하여금 ‘의견의 경쟁’을 시켜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요소는 무엇인가.
“우선 정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 감소다. 미국에서도 이제 대통령선거 정도만 관심을 끈다. 다른 상·하원 선거는 누가 나왔는지도 잘 모를 만큼 흥행이 잘 안 된다. 더불어 손쉽게 여러 명 동원이 가능한 SNS도 때론 위험하다. 예컨대 이집트의 한 젊은이가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대학은 나왔지만 실업자였다. 그래서 카이로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가 친구들에게 정부 청사들을 공격해 불살라 버리자는 메일을 보낼 수 있다. 그러면 특별한 지도자나 조직이 없어도 얼마든지 정부 청사 공격이 가능하다. 이런 게 민주주의 시스템을 망칠 수 있다.”

-중국 정치를 서양식 민주주의 시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나의 멘토였던 시카고대 밀턴 프리드먼(경제학) 교수는 1 달러를 꺼내 보이면서 ‘이게 바로 민주주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돈으로 술을 사든, 담배를 구입하든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선택의 자유인 것이다. 세상엔 놀라운 경제 발전 결과, 중국에서도 고를 수 있는 종류가 급격히 증가한 건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마을의 위원회에 누구를 뽑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과연 이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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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