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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월호 비극', 제도만으로는 못 막는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온 나라가 슬픔으로 가득하다. 큰일을 당할 때마다 겪게 되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는 도를 넘어섰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생각도 자꾸 멈춰진다. 비슷한 일로 대체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과 분노가 뒤섞인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다시금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전규제를 강화하고 규제가 작동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하고, 그러고도 큰일이 발생하면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 이것이 해결책이다.

 큰 인재(人災)가 빈번히 재발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안전에 대한 규제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있는 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느라 재앙을 키운다. 제대로 된 지휘체계가 없고 대처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희생은 커지기만 한다. 서해훼리호 사건 때도 그랬고, 연초에 있었던 대학생 참사 때도 똑같았다.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거듭한 한국이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규제라 하면 모두 제거해야 할 괴물로 인식하지만 이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경제적 규제는 풀되 안전과 같은 사회적 규제는 강화하는 것이 선진국의 예다. 우리는 규제를 푼다는 소리만 외쳐댔지 꼭 필요한 안전규제를 늘리겠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안전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감독과 관리를 철저히 하고, 어길 때는 반드시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부정한 거래나 연줄과 안면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하는 공무원이 있으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 적어도 안전과 관련된 봐주기는 완전히 끊어야 한다. 원전 마피아에 이어 이번 사건에는 관료 출신의 해피아가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큰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저 속이 타들어 갈 뿐이다. 정부 부처들이 짧은 시간 안에 긴밀히 협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을 미루기 일쑤고, 누가 하겠거니 하고 뒷짐을 져버린다. 이참에 안전과 관련된 책임을 지는 조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늘 그러했듯이 이번 정부도 출범과 함께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안전을 강조한 것은 제대로 된 방향이었다. 그러나 개명과 더불어 실질적 기능을 강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민생치안에 초점을 두다 보니 정작 큰 재앙에 대처하는 기능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국가안전청이라도 설립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정부라는 것은 조직과 인력이 정비되고 권한을 부여해야 기능을 하게 된다. 이름의 순서만 달랑 바꾼다고 안 되던 것이 될 리 만무하다. 정부 조직을 늘리려 한다고 펄쩍 뛸 사람도 있겠지만 필요한 조직은 당연히 늘려야 한다. 그래야 책임을 따질 수 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큰일이 벌어질 때마다 여론에 떠밀려 이런저런 약속을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1992년 신행주대교가 붕괴되었을 때 정부는 전국 교량 일제점검 및 주요 교량 분기점검을 약속했으나 2년이 지나자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부산 구포열차 사고(93) 때에도 정부 차원의 일원화된 위기관리체제 확립을 약속했지만 전남 화순(95)과 전북 남원(97)에서 철도 건널목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삼풍백화점 붕괴(95) 때도 소방청 설치 등 위기관리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과 재난관리법을 제정했지만 99년 경기도 화성에서 씨랜드 화재사건이 발생했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천안초등학교 합숙소 화재 참사가 이어졌다.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것이라면 너무나 중증이다. 대형 사고가 있을 때마다 일반인이나 관계자가 깊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학습을 통한 위기극복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안전과 관련된 지식이 한 기관에 집중되도록 하고 이것을 통해 조직학습(organization learning)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안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든 사고를 가정한 예행연습에 기꺼이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유람선을 타면 사고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입고 대피하는 연습을 시키는 선진국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학생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더라도 대피 안내를 먼저 하는 곳이 미국이다. 귀찮아 하거나 항의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우리에게 안전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과거의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노력을 뼈저리게 할 때만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슬픔과 아픔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희생양을 찾고 그것을 재물 삼아 아픔을 쉽게 잊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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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