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100만 함성 … 보스턴은 테러보다 강했다

1년 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양 다리를 모두 잃은 셀레스테 코르코란(가운데)이 22일 딸(오른쪽)과 누이의 손을 잡고 결승선에 다시 섰다. [보스턴 AP=뉴시스]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 테러 1주년을 맞은 2014년 보스턴 마라톤의 슬로건처럼 보스턴은 강했다.

 지난해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에서 발생한 테러로 3명이 숨지고 260명이 부상당했다. 배낭 속에 담긴 압력밥솥 사제 폭탄이 막 결승선으로 선수들이 들어오는 시점에 맞춰 터졌다.

 축제를 한순간 아비규환으로 만든 기억은 끔찍했지만 21일(한국시간) 열린 제118회 보스턴 마라톤은 테러보다 강했다. 어느 때보다 삼엄한 경비 속에 대회가 치러졌지만 대회 참가자와 관람객은 예년보다 훨씬 많았다. 출전 선수는 3만5755명으로, 지난해(2만3336명)보다 무려 1만2419명(53%) 늘었다. 관람객은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평소 관람객 50만 명의 두 배였다.

 이날 대회장에는 매사추세츠주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 등 3500명이 삼엄한 경비에 나섰다. 보안요원 100여 명이 출발을 앞두고 코스를 마지막 점검했다. 선수는 물론 관람객도 대회장으로 배낭을 메고 들어올 수 없었다. 1L 넘는 액체와 얼굴 전체를 치장한 페이스 페인팅도 금지됐다. 관람객은 금속탐지기와 보안견의 검색도 거쳐야 했다. 힘들고 귀찮은 과정을 거쳤지만 보스턴 시민의 자발적 참여 열기가 더 뜨거웠다. 적극적인 대회 참가와 응원으로 테러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게 보스턴과 미국의 여론이었다.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슬로건을 담은 티셔츠는 6만 장 이상 팔렸다. 티셔츠 판매 수익금은 100만 달러를 훌쩍 넘겼는데 테러 피해자를 돕는 데 쓰였다.

웰슬리대학 부근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환호하는 응원단(위 사진). 남자부 우승을 차지한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 멥 케플레지기.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보스턴 마라톤을 축제처럼 떠들썩하게 만드는 건 치유를 위한 몸부림이자 도전이다. 지난해 결승선 부근에서 테러를 목격한 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터 리들(45)은 “마라톤을 하면서 테러 현장을 다시 뛰는 건 평상심을 되찾고 다시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관람객 앨리제 앤드루는 ‘고통은 순간이며 명예는 영원하다(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라는 응원 피켓을 준비했다. 그는 대회를 며칠 앞두고 “지난해 내가 결승선을 지난 후 얼마 안 돼 폭탄이 터졌다. 심장이 완전히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올해는 어느 때보다 더 참가하고 싶다”며 “우울한 레이스이기도 하지만 도시 전체가 사랑과 흥분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파편에 맞아 왼쪽 다리를 다친 리 앤 야니(32)는 “난 잘 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달리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 달리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마라토너들도 출전했다. 현지 한인과 한국에서 온 60여 명의 참가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묵념을 한 뒤 오른손에 검은색 팔찌를 두르고 달렸다. 참가자들은 추모 장면을 지켜본 뒤 다가와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애틀랜타의 한인 마라톤클럽 ‘버커스’의 최선호 회장은 “지난해 테러 때 아수라장이 된 보스턴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달리는 내내 세월호 희생자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추모하고 다시 일어서자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고 말했다.

 경기 전날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 행사가 열렸다. 마칭 밴드와 함께 그라운드를 도는 테러 부상자들과 가족들에게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며 1년 전의 아픔을 나누고, 극복을 다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는 미국인 멥 케플레지기(39)가 2시간8분37초로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미국인이 보스턴 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한 건 1983년 그레그 메이어 이후 31년 만이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독주하던 최근의 흐름을 뒤집는 이변이다. 최근 30년 동안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선수가 무려 24회나 챔피언에 올랐다. 이번 대회 2위도 케냐의 윌슨 체벳(29)이다. 케플레지기에게 불과 11초 뒤졌다.

 케플레지기는 에티오피아와 30년 전쟁을 치른 에리트레아 태생의 아프리칸-아메리칸이다. 전쟁과 징집을 피해 8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정착했다. 지난해는 부상 때문에 대회에 불참했고, 응원을 하다가 테러 5분 전 자리를 떠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아내와 기쁨을 나눈 케플레지기는 “내가 아니라 보스턴이 강했다. 지난해 참사는 정말 슬픈 일이지만 미국인, 보스턴 시민은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뭉쳤다. 지난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컵을 결승선에 바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우승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출전 번호표에 보스턴 테러 희생자의 이름을 새기고 42.195㎞를 달렸다.

이해준 기자

◆보스턴 마라톤=미국의 독립전쟁을 기념해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열린다. 1897년에 시작해 이번 대회가 118회째다. 한국과 인연도 깊다. 1947년 대회에서는 서윤복이 우승했고, 50년에는 함기용·송길윤·최윤칠이 1~3위를 석권했다. 이봉주는 2001년 4월 16일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한국인으로서 보스턴 마라톤 세 번째 우승자가 됐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태그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