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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또 다른 재난과 위기에 대비해야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충격과 분노, 허탈감에 빠졌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대형사고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앞에서 벌어지고,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속절없이 사그라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목도하면서 나라 전체가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빠진 듯하다. 정치 일정과 각종 연예·오락 행사가 중단되거나 취소됐고, 일반 국민들도 망연자실한 가운데 유흥과 여가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 바람에 경제활동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기업들은 신제품 출시와 제품 홍보를 미루고, 소비자들은 아예 지갑을 닫고 있다.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해서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와 성원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태수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나치게 깨뜨리고, 다른 분야의 통상적인 기능과 활동까지 마비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숙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정부나 기업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마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엄혹할수록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제 몫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대형사고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어디서 또 다른 재난과 위기의 싹이 자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대형사고와 위기는 한 번의 충격이나 실수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고의 징후와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몇 번은 가까스로 사고와 위기의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뒤에 대형사고와 위기가 터지는 법이다. 1930년대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자인 하인리히라는 사람은 수천 건의 재해사고를 분석한 끝에 모든 사고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통계적으로 한 건의 대형사고는 평균 300번의 경미한 사고의 징후를 보이고, 사고 직전까지 가는 아찔한 순간을 29번 거친 뒤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다. 무릇 대형사고는 수많은 사고의 조짐에도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아찔한 위험 경고마저 무시한 끝에 터지고야 마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수많은 부실과 부주의, 태만과 무책임이 누적된 결과 벌어졌다. 사고를 피하거나 대비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놓쳤음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1997년 외환위기도 사전에 수많은 위기의 징후와 경고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나 대비를 못하다가 결국은 허망하게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린 경우다. 기업의 부실과 막대한 부채를 방치하고, 허술한 외환관리체계를 정비하지 못하다가 외부의 작은 충격만으로도 나라의 경제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의 서슬 퍼런 질책에 눌려 온 정부가 사고수습과 해난사고 방지대책 마련에 부산하지만, 사고가 어디 해난사고뿐인가. 사소한 사고의 징후를 놓치고, 위험의 경고등을 무시하고 있는 분야가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재난이나 위기의 조짐을 발견해 문제를 시정하고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은 대체로 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리 사고와 위기를 예방한다는 것은 사실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사고나 위기의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사고나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칭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꾸로 사고나 위기가 벌어지면 그제야 그간의 무대책과 무책임이 드러날 뿐이다. 그렇다고 사고가 터질 때까지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전 부처가 세월호 충격에 넋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소관분야에서 예상할 수 있는 사고와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최선을 다해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보답이 없더라도 맡은 바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다.

 당장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시작한 공공기관 혁신과 규제 개혁부터 마음을 다잡고 추진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이미 위기의 경고등이 켜진 분야다. 지금부터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대형사고와 위기가 벌어지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침통한 분위기라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세월호 사고에 묻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주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해 위험신호를 보냈다. 한국이 서비스산업과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못하면 10년 뒤 잠재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1990년대 7%에서 최근 3%대로 떨어진 마당에 앞으로 2%까지 낮아진다는 것은 선진국 도약이 물 건너간다는 얘기다. 서비스산업과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는다고 한국 경제가 당장 결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의 조짐을 방치하면 결국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IMF의 경고 자체를 위기의 징후로 간주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가적인 재난이자 비극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일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미국민을 집단적 트라우마로 몰고 간 9·11 테러사건 이후 일주일 만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일상은 계속돼야 한다(Life goes on)”고 말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차분히 일상으로 복귀해 또 다른 위기나 재난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때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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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