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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있는 그대로 전해주세요"

권석천
논설위원
내가 진도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건 지난 토요일(19일) 오후였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먼저 마주친 것은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체육관 2층 스탠드로 올라가 보니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이 학급별로 모여 있었다. 무심코 뒤쪽에 서 있는데 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기자예요? 저기 저쪽으로 가세요.” 이후 2박 3일 동안 격한 얼굴로 기자들을 떠미는 모습과 수없이 마주해야 했다.

 실종자 수색 현장인 팽목항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실종 학생 아버지들은 취재 카메라나 수첩이 눈에 띌 때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지” 하며 팔을 들어올렸다. 오열하는 가족들을 촬영하는 카메라에 욕설과 함께 물병이 날아오기도 했다. 가족들은 오히려 외신 취재팀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지난 20일 아침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며 진도대교 앞까지 진출한 뒤 경찰 6개 중대와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도착해보니 한 실종 학생 어머니가 취재진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기자분들, 우리 좀 도와주세요.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주세요.”

 뒤쪽에서 성난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그런 얘기 할 필요 없어요. (기사를) 위에서 자르는 거잖아.” “모두 다 물에 뛰어들어야 되겠어?” “우리가 힘이 없어서 아이들을….”

 20년 넘게 기자란 직업인으로 살아온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른 걸까. 가족들이 너무 흥분해 이러는 걸까.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까웠다.

 불신은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시작됐다. “(학생) 전원 구조” 속보를 믿고 있던 부모들은 실제 상황이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아이를 두 번 죽였다”는 것이다. 방송사와 인터넷 매체들은 “경기도교육청 발표를 보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오보가 면책되는 건 아니다. 조간신문들은 발생 시간대가 오전이었던 때문에 오보를 피했을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잠수 512명, 헬기 29대, 함정 171척.”(17일) “잠수 535명, 헬기 31대, 함정 173척.”(18일) 사고 후 신문과 방송은 정부의 대대적인 구조 계획을 쏟아냈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배치된 건 맞지만 뒤늦은 대응과 구조 장비 설치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실제 수색에 투입된 인력은 수십 명에 그쳤다. 가족들은 “언론이 정부 입장만 보도하고 우리 목소리는 무시한다”고 받아들였다. ‘발표 받아쓰기’가 낸 상처를 덧낸 건 무분별한 속보 경쟁과 추측성 보도들이었다.

 취재 방식도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부두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20대 여성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말 같지 않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들은 취재 대상이나 피사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묻고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기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취재·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한겨레신문 ‘정석구 칼럼’)는 고백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세월호 사고는 언론에도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자극적 영상이나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한다. 철저한 검증을 한다.’ 기자협회가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취재의 기본에 해당하는 원칙들이다. 가족들 마음에 공감한다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장 기자들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언론계 종사자들이 반성할 일이다. 정부의 재난 대응시스템도 리셋(reset)돼야 하지만 언론의 취재·보도 시스템 역시 리셋이 필요하다. 선장에게 최후까지 승객을 지켜야 한다는 ‘재선(在船) 의무’가 있다면 기자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신뢰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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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