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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개 밥그릇 챙긴 고관, 돈 말리는 선장

이하경
논설주간
소설가 김훈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세 살이었다. 어머니는 어린것들을 피란 열차의 지붕에 실었다. 서울을 떠나 남으로, 남으로 향한 8박9일의 위태로운 여정이었다. 추위에 얼어 죽거나 떨어져 죽은 생명이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민초(民草)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고관들은 피아노·응접세트에 개 밥그릇까지 챙겨 객실에 올라탔다. 어린 김훈이 커 가면서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64년이 흐른 2014년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세월호에 탄 수백 명이 물속에 잠기는 충격적인 장면을 온 국민이 TV 생중계로 봤다. 이런 고문이 없었다. 평소 “바다에 살고, 바다에 죽겠다”던 선장은 승객을 버리고 제 목숨 하나 건졌다. 구조될 수 있었던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선장의 말만 믿다 화를 당했다.

 첫 배에 올라타 구조된 선장은 실종자들이 바닷속 사지(死地)에서 극한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을 때 물에 젖은 5만원권을 말렸다. 이렇게 두 세대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개 밥그릇을 챙기던 고관 대신 돈을 말리는 선장이 등장했을 뿐이다. 2014년 진도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도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기심이 이겼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윤리, 시대정신은 문명 이전의 야만상태에 머물고 있다.

 여론은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아우성이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훨씬 많은 어린 생명들이 세월호와 함께 차디찬 바다에 갇혀 버린 가혹한 현실에 분노한다. 사람들은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절규한다. 선장은 유죄다. 검찰이 살인죄 적용을 검토할 만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죄인가. 휴대전화와 반도체·자동차를 잘 만들고, 김연아와 류현진이 있으면 다 용서되는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 염치가 실종된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현실을 만들어낸 데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이 나라에선 공부만 잘하면 된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다. 돈 있으면 ‘황제 노역’도 되고, 돈 없으면 ‘세 모녀 자살’도 남의 일이 아니다.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끼리끼리 특권을 주고받으면서 살아도 되는 사회. 그게 이번에 세월호를 침몰시킨 대한민국의 실체다. 이런 부끄러운 자화상이 집단적으로 투사(投射)된 결과가 ‘도망간 선장’에 대한 핏발 선 욕설이 아니었을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훨씬 넘어 몇 년 뒤면 4만 달러가 된다는데 수학여행 한 번 잘못 가면 못 돌아오는 기막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와 장관, 해양수산부·해경의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지 못한 모두가 세월호 침몰의 공범이다. 이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온 우리 모두도 유죄다. 대통령은 선장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분노했지만 그에게 돌을 던진다고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선 사람이 수백 명이나 죽는 사고가 나도 도대체 몇 명이 배에 탔는지, 몇 명이 구조됐는지, 화물을 얼마나 실었는지 바로는 알 길이 없다. 그 잘난 공무원들이 만든 3200개의 안전·위기대응 매뉴얼도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큰 사고가 터져도 잠시 호들갑을 떨 뿐 대충 서너 달 지나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탈법과 편법에 기대서 사는 더러운 현실에 공동체가 결박돼 있기 때문이다. 모로 누운 세월호를 다시 세우고, 도망가는 선장의 발길을 되돌려 놓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18년 된 중고선 세월호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선사(船社)는 사람을 더 태우고 화물을 더 실을 수 있도록 구조를 뜯어고쳤다. 세월호 전직 기관사들은 “배가 자주 기울어 찜찜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그만뒀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세월호는 두 달 전 안전검사를 통과했다. 검사기관의 책임자는 해수부 관료 출신이다. 선사를 감독하는 단체와 선박 검사기관은 수십 년째 해수부 마피아가 통치하는 왕국이다. 헌법 34조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스스로 헌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죄를 범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이며,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고 했다. 이젠 우리 모두가 세월호 참사의 공범임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게 희생자를 위로하고 모두가 사는 길이다. 아찔한 현기(眩氣)를 일으키는 질주를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정상적인 세상이 될 수 있다.

 악몽의 일주일이 지났다. 차라리 한바탕의 꿈이었으면 좋겠다. 세월호에 갇힌 귀중한 생명들이 돌아오길 두 손 모아 기다린다. 기적이 있기에 기적이라는 말도 있는 법이다. 기적을 간절히 기원한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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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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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