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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덩이 6개 달고 목숨 건 잠수 … 10명이 동시다발 선내 수색





대조영함 머리 다친 병장은 숨져





















19일 밤 세월호 침몰 해역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실종자 수색작업을 위해 쏘아 올린 800여 발의 조명탄이 어둑해진 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그러나 구조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었다. 거센 물살과 20㎝에 불과한 흐릿한 시정(視程)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관·군 합동구조팀 500여 명은 거친 바다에 맞서 구조작업을 이어갔다.



 오후 11시48분. 잠수부 2명이 침몰한 세월호 4층 중앙 창문을 손도끼로 깨고 격실에 진입했다. 격실 안으로 들어서자 시신 3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신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방에 들어찬 바닷물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침몰 시작 87시간 만에 처음으로 선내에서 수습한 시신이었다.



 4층 중앙 창문이 깨지면서 선내 수색이 가능해졌다. 20일 자정이 넘어가면서 수색작업은 활기를 띠었다. 잠수부들은 2인 1조로 깨져 있는 4층 중앙 창문 쪽으로 생명줄 격인 가이드라인을 따라 객실 내부로 들어가기를 거듭했다.



 그러나 수색 과정은 험난했다. 빠른 물살이 잠수부들을 강하게 밀어냈다. 이날 오전 구조작업에 참여한 한국구조연합회 이응만(46)씨는 배와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몇 번이나 놓칠 뻔했다고 한다. 이씨는 “허리춤에 1㎏짜리 납덩어리 6개를 차고 물에 들어갔는데도 빠른 유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잠수부들이 침몰한 세월호 4층에 도달하는 데는 평균 20~25분가량 걸렸다. 실제 수색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5~10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수색작업에 참여한 한우연(48) 한국해양구조협회 여수지부 팀장은 “유속이 강하면 안전줄을 잡고 내려가는 데 평소보다 많은 산소를 소모한다”며 “수중 수색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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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5시35분쯤 구조팀은 4층 격실 내부에 가까스로 다시 진입했다. 격실에선 남자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25분 뒤엔 남자 시신 1구와 여자 시신 2구를 더 찾아냈다. 7시40부터 8시2분 사이에도 남자 시신 6구가 추가 발견됐다.



 구조 당국은 오전 10시17분쯤 가이드라인 2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가이드라인은 조타실 앞쪽과 왼쪽, 식당, 선미, 선체 중앙 쪽 등 총 5군데다. 가이드라인이 늘어나면서 선실 내부 수색이 활발해졌다. 오후 1시35분 격실 내부에 시신 4구가 잇따라 발견됐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기름이 사고 해역에 확산됐다. 이날 오후 기름띠는 8㎞가량 퍼진 상태였다. 침몰 당시 세월호에는 벙커C유 13만9000L 등 총 20만3000L가량의 기름이 적재돼 있었다. 사고 해역에선 방제선 23척이 흡착포를 달고 기름띠 주변을 맴돌거나 중화제를 뿌렸다. 구조작업에 참여한 한국수중환경협회 소속 김성광(35)씨는 “기름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전했다.



 한편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 투입돼 대조영함 내에서 작업을 하던 중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윤모(21) 병장이 19일 숨졌다. 윤 병장은 사고 후 제주 한라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정강현·위성욱 기자, 진도=이유정·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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