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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명단 앞 "기념사진 찍자" … 안행부 국장 직위 박탈

20일 새벽 진도체육관에 온 정홍원 총리의 차량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정 총리는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뉴시스]

20일 오후 5시30분 진도군 팽목항. “뭐라고” 하는 소리가 터졌다. 실종자 가족 대표와 회의를 한 안전행정부 감사관 송영철 국장이 사망자 명단이 적힌 상황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자 가족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송 국장은 근처 상황실로 대피했고, 가족들은 쫓아가 상황실 앞에서 사과를 요구했다. 이 바람에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상황실에 갇혔다. 가족들은 “사진 찍자고 한 사람 나오라고 해”라고 소리치며 상황실 앞에서 농성했다. 일부는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복경찰 20여 명을 상황실 근처에 배치했다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철수시켰다. 오후 8시쯤 일부 가족이 “이런다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냉정을 찾자”고 해 농성을 풀었고, 이 장관은 현장을 떠났다. 안행부는 이날 송 국장을 직위 박탈하고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 장관은 이보다 17시간 앞서서도 200여 명의 실종자 가족에게 둘러싸였다. 20일 0시50분 진도실내체육관 앞에서였다.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가겠다고 버스에 오르는 걸 제지했다”는 경찰 보고를 듣고 달려오는 길이었다. 100여 명이 약 한 시간 전 “최선을 다해 구조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다시 만나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겠다”며 버스를 타려다 경찰에 막힌 직후였다.

 이 장관이 “최선을 다해 구조 중”이라고 한마디를 꺼내자 “다 거짓말이다. 총리를 불러라”는 고함이 터졌다. 한 시간쯤 지나 정홍원 총리가 현장에 왔다. 가족들은 “상황이 급박하니 구조와 선박 인양을 동시에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총리는 “ 인양하면 생존이 어렵다”며 그 부분은 (대통령에게) 건의해 봐야 한다”고 답했다. 순간 “ 대통령만이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 청와대로 가자”는 외침이 나왔다. 100여 명이 경찰 제지를 뚫고 걸어 나갔다. 나머지 100여 명은 승용차에 오른 정 총리를 에워쌌다. 누군가 “거짓말만 하고 팔짱 끼고 도망가려 한다”고 소리쳤다. 정 총리는 2시간 넘게 갇혀 있다 풀려났다.

 청와대를 향해 도보행진에 나선 가족들은 오전 6시30분 실내체육관에서 12㎞ 떨어진 곳에서 경찰과 맞닥뜨렸다. 몸싸움이 벌어졌으나 경찰 저지를 뚫지는 못했다. 한 40대 여성은 “제발 죽은 자식이라도 하루빨리 안아 볼 수 있게 해 달라”며 경찰을 붙들고 애원했다. 대통령을 만나 시신 인양작업을 빨리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달라는 얘기였다. 경찰은 “지친 상태에서 큰길을 걷다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길을 막은 이유를 설명했다.

 대치가 계속됐다. 가족들은 “총리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이들은 오전 10시15분 “총리가 체육관에 오기로 했다”는 박근주 진도경찰서장의 얘기에 버스를 불러 돌아갔다. 정 총리는 이날 낮 12시 30분 체육관을 찾아 가족 대표와 면담했다. 정 총리는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조인원을 늘리고 현장 상황을 신속히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로 도보행진을 한 것에 대해 정진섭(42)씨는 “하지 않은 공기주입을 했다고 하고, 실종자 숫자조차 제대로 모르는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분노의 행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튿날인 17일 해양경찰이 “오전 중 공기주입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세 차례 더 미루다가 18일 오전 11시19분에야 이뤄진 점 등을 놓고 하는 소리였다. 정부는 잠수부들이 잡고 세월호로 내려가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설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해경은 지난 19일 “오전 5시까지 가이드라인 3개를 달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실제로 설치된 것은 2개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생존 가능성이 남은 72시간 ‘골든 타임’이 지난 19일로 지나면서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젠 세월호를 인양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영동(45)씨는 “시간이 흐르면 시신이 훼손될 테니 더 늦기 전에 배를 인양해 시신이라도 온전히 찾고 싶다”며 “아직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일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진도=권철암·최종권·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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