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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결혼식도 가기 싫어요" 대한민국 집단 트라우마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합동대법회’가 열린 19일 대구 중동교에서 어린이들이 유등을 띄우고 있고(왼쪽), 20일 서울 가회동성당 성전봉헌식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이 “특별히 세월호 사망자와 실종자들을 기억할 것”을 요청하자 신도들이 기도했다. [김경빈 기자], [프리랜서 공정식]


회사원 윤모(36·서울 강서구)씨는 19일 부부 싸움을 했다. 온종일 세월호 뉴스에 매달린 아내를 향해 “이제 그만해라. 당신이 화낸다고 달라지는 게 없지 않으냐”고 소리친 게 도화선이었다. 화가 나서 TV를 꺼 버렸다. 아내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 저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라며 신경질을 냈다. 아내는 16일 사고 발생 이후 거의 온종일 TV 채널을 돌려가며 울고 화를 내는 일을 반복했다. 윤씨는 “결혼 5년 동안 아내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슬픔 → 분통 → 무기력 반복
수습까지 시간 걸려 충격 더 커
또래 청소년들 자기 일처럼 느껴
뉴스 노출 줄이고 대화 늘려야



 시민들은 바깥 나들이를 자제한 채 구조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주말인 19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는 전주보다 33% 줄어든 3만여 명이 찾았다. 서울대공원 나들이객도 24% 감소했다. 단체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4∼5월 코레일 관광열차 운행도 6회 취소됐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슬픔이 깊어지고 있다. 집단 무기력증에다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trauma) 증세가 나타난다. 김영훈(인제대 백병원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언론 보도를 비롯한 현재 상황이 국민을 너무 깊은 애도 반응으로 몰아가 트라우마에 계속 노출될까 걱정”이라며 “일반인은 일터로, 학생들은 학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침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려면 앞으로 상당 기간 걸릴 것이고, 이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과 연이은 눈물이다. 회사원 박모(39·서울 도봉구)씨는 20일 부산의 친척 결혼식에 혼자 갔다. 아내와 아이(5)가 같이 갈 계획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박씨는 “아내가 TV 앞에서 울고만 있어 같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들의 충격은 더하다. 한 엄마는 인터넷 육아카페에서 “이제는 샤워하다가, 거울을 보다가,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보다가도 눈물이 쏟아진다. 하루에 5번 이상 눈물을 쏟고 100번 이상 울컥해지고 심장이 구겨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도 모르겠고 도움을 못 주는 현실에서 죄책감이 밀려온다. 온종일 이 사건 생각밖에 없다”고 글을 올렸다. 다른 엄마는 “나도 어제 가슴이 먹먹해 새벽 4시까지 잠이 안 왔다”며 “처음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공감을 표했다.



부활절인 20일 성당·교회에 모인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했다. ‘대구지역 연합예배’에 참석한 신도들이 대구스타디움에서 ‘기적’을 만들고 있다. [뉴시스]


 학생과 교사에게 세월호의 아픔은 남다르다. 한 여학생은 이번 사건 희생자에 친구가 포함된 사실을 확인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울기만 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자 엄마 손에 이끌려 정신과의원을 찾았다. 경기도 안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현직 교사 김모(33·여)씨는 혹시 아는 교사가 화를 당하지나 않았을까 걱정돼 매일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는 “학생들을 지키려고 교사들이 애쓴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단원고 교감 선생 사망사건도 그렇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달라지는 게 없는데 계속 TV를 켜 놓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며 “입맛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소영 교수는 “일부 학교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의 글을 쓰게 하는데,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거에 사고로 가족을 잃은 적이 있는 학생이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청소년을 둔 부모가 할 일 세 가지를 제시한다. 소통을 통해 아이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내고, 아이가 이번 사고를 본인의 일로 개인화해 왜곡하지 않게 돕고, 세상이 안전하고 헤쳐 나가야 할 일이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외부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종일 TV 뉴스에 노출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아예 금지하는 것도 문제가 있으니 부모가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노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원래 정신장애가 있으면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만희(노만희 정신과 원장) 전문의는 “불안장애·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이번 사고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족들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며 “심해지면 주치의를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재의 슬픔이 당연하다는 진단도 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로 슬프고 힘들고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며, 기성세대의 잘못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뭐가 잘못됐다고 욕만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기 때문에 의분(義憤·의로운 분노)으로 전환해 해양안전 시스템이나 트라우마 지원체계를 바꾸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 기자



◆트라우마(trauma)=본래 외상(外傷)을 뜻하는 의학용어이지만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사고로 인한 외상 또는 충격으로 우울하거나 불안해하는 등 정서적인 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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