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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카레순두부, 계란부추범벅 … 유학파 형제가 만든 엄마의 밥상

‘집밥’이 트렌드다. 그런데 요즘의 ‘집밥 식당’은 기성세대 때와 많이 다르다. 오래된 집, 익숙한 맛, 강북에 위치. 이런 공식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들은 집에서 정통 한식만 해주신 게 아니다. 요리 솜씨를 뽐내기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표 요리’를 만들어 주셨다. 가지볶음밥, 게살알밥, 배추탕. 식당 ‘범스(BUMS)’의 메뉴들처럼 말이다. 요리 비전공자인 유학파 형제가 세상에 하나뿐인 집밥 식당을 꾸려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머니는 가장 창조적인 요리사”

화려한 명품 숍이 빼곡히 들어선 청담동의 한 골목에 촌스러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뜨끈한 배추탕’ ‘1977년 김치찌개’. 배춧국도 아닌 배추탕은 뭔가?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웬만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뺨치게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다. 2010년부터 조준범(37), 재범(35) 형제가 운영해온 집밥 식당 ‘범스(BUM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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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메뉴는 ‘외할머니 간장게장’. 메뉴판엔 ‘3대에 걸쳐 담가 온 갖은 양념이 들어간 간장게장’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식사 메뉴를 보니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이라면 메뉴판 들고 꽤 씨름할 것 같다. 떡갈비·돼지불고기·가지찜·김치전 같은 익숙한 메뉴가 있는가 하면 배추탕·카레순두부·계란부추범벅 같은 난생 처음 보는 메뉴도 있다.


 “모두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음식입니다.”

 준수한 외모의 훈남 형제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각각 산업디자인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엔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서른 중반, 남자라면 한 번은 욕심내보는 ‘내 사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 유학생활을 하면서 맛있는 집밥이 늘 그리웠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믿고 먹을 수 있는 밥집이 드물다는 걸 알았죠.”

 자본금은 3억원. 형제가 반씩 부담했다. ‘집밥 식당’을 결심하고 6개월간 형제는 어머니께 스파르타식 요리 훈련을 받았다.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범스의 모든 음식은 형제가 직접 만든다.

친구들이 탐내던 형제의 밥상

“어머니는 요리하기를 참 좋아하셨어요. 평범한 주부였는데 TV 요리 프로그램이나 요리학원에서 뭔가를 배우면 꼭 자신만의 요리법을 응용한 음식을 만드셨죠. 연한 카레에 순두부를 넣은 건지, 순두부찌개에 카레가루를 넣은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레순두부찌개’ 같은 거요.”(웃음)

 형제는 한식의 깊은 맛에 엄마의 창의적인 손맛이 어우러진 음식이 범스의 메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범스의 메뉴들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뭔가 색다르다. 간장게장도 간장을 부어 게를 삭힌 건 맞는데 양념이 조금 다르다. 고춧가루와 잘게 썬 쪽파, 양파가 들어갔다. 그런데 맵지 않고 뒷맛은 개운하다. ‘게살알밥’은 이 간장게장 소스에 게살과 날치 알을 듬뿍 얹어 비벼 먹는 음식이다. 속풀이에 좋은 ‘배추탕’은 단맛 나는 싱싱한 배추와 감자·청양고추를 넣고 끓인 것으로 배춧국보다 국물 맛이 진하고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게 특징이다.

 “방학 때마다 한국 집에 돌아와 맛보는 집밥은 친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맛이었어요. ”

 입맛이 섬세해 까다로운 형 준범씨는 어머니 요리에 언제나 ‘토’를 달았던 걸 후회한다.

 “간이 안 맞네, 이건 맛이 이상해 등등 꼭 한마디씩 했죠. 새벽부터 신나게 요리했을 어머니께 상처가 됐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요.”

 뭐든 먹는 걸 좋아해 중학교 땐 제법 뚱뚱했던 동생 재범씨는 다른 집에서도 다 그렇게 먹는 줄 알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핑계로 밥 때마다 우리집에 찾아오는 친구들의 식탐이 식당 창업의 결정적 동기가 됐던 것 같아요.”(웃음)

개점 후 4년.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욕심 내 새벽 2시까지 영업했다. 심야엔 술이 메인이었다. 형제도 술을 좋아하는 터라 지인들이 오는 날엔 함께 어울렸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체력도 달렸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게 더 심각했어요. 엄마의 정성이 느껴지는 맛깔 나는 집밥을 만들자 해놓고 현실은 실내 포장마차더라고요.”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줄이는 데는 형제가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메뉴에서 소주를 없애자는 데는 의견이 갈렸다. “음식 맛에 집중하려면 쉽게 취하는 소주를 없애야 한다”는 동생과 “ 단골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형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동생이 이겼다. 실제로 소주를 없앤 후 한동안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도 버텼다. 형제는 그때 결정하기를 잘했다며 웃는다.

 “청담동은 술집 트렌드가 빨라요. 어느 집이 뜬다 하면 우르르 몰렸다가 메뚜기처럼 또 다른 집으로 옮겨가죠. 그래서 ‘집밥’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거죠.”

 요즘 형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곧 있으면 신 메뉴가 선보인다. 어머니가 아이디어를 낸 ‘연근버거’다.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적절한 배합 비율과 곁들일 만한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섬세한 입맛을 가진 형은 음식에, 대중적인 입맛을 가진 동생은 이름과 마케팅 방법에 따로 또 같이 집중하고 있다. 5월 중엔 외할머니까지 3대의 정성이 담긴 간장게장 전문점도 오픈한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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