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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세월호 생존자도 구하라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오래 살아남았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33년 나치를 피해 고향 독일을 떠났다. 10년의 망명 기간, 그가 떠나온 곳에선 홀로코스트와 전쟁이 있었고 많은 이가 죽어갔다. 반전주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는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 공산주의와 함께했고 심지어 미국에까지 망명했다. 그는 살아남았으나 가족과 친구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고 그에게 날아들었다. 시(詩)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이라고 써야 더 적확할지 모른다.



 생존자 죄책감, 혹은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 이 단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심리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자식은 죽고 나만 살아 돌아왔다” “친구의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봤다” “강간당한 그녀의 눈을 나는 외면했다” “어머니가 어젯밤 독일군 장교에게 끌려갔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극도의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기를 연민하는 대신 학대했다. 이런 증상은 자연재해·대형사고·전염병·성폭행 혹은 대규모 정리해고 생존자들에게서도 같은 형태로 발현됐다.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에서 ‘만성적인 외상’을 얘기한다. 정신적 외상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그것이 반복되리라는 걸 생존자가 알고 있는 상태. 그렇게 되면 상처는 계속 덧나 곪아터진다.



 18일 세월호의 생존자 강민규 안산단원고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가 침몰하기 전 그는 탈출했다. 그 시각 자기 학교 2학년 325명 중 250명은 실종되거나 죽어갔다. 교사 14명 중엔 자신을 포함해 3명만이 살아남았다. 강 교감은 책임자였지만 학생의 죽음에 무력했다. 누군가는 교감의 도덕성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외상에 노출됐고, 그 외상이 지속되리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다.



 “생존자는 분노를 통제하려고 다른 사람을 더욱더 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존자의 고립은 영속된다. 결국 생존자는 분노와 혐오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여러 연구는 살인, 자살, 의문의 사고로 인해 생존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했다는 일관된 기록을 남겼다(『트라우마』, 허먼).”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변을 당했지만 (아직은) 일부만 살아남았다. 기적은 분명 일어날 것이기에 총력을 다한 구조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생존자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감정을 드러내고 혹은 숨기고 있는지, 혹시 불합리한 질책과 자기학대 속에 방치된 건 아닌지 마땅히 누군가는 생존자를 위한 구호에 나서야 한다. 한 명을 구하는 게 기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생존자 한 명을 잃었다. 생존자의 죄책감은 아주 오랜 기간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돼야 한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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