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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평양은 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미국에서 흔히 쓰는 말로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는 게 있다. 다른 더 나은 길이 있음에도 항상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불행이 초래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표현하면 ‘하려는 일마다 자꾸 안 되는 방향으로 꼬이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아마 북한처럼 이 법칙이 잘 맞아떨어지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2009년 4월 5일 오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역사적 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평양은 체코 현지시간으로 그날 새벽 보란 듯 장거리 로켓 은하2호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펜을 들고 ‘도발에는 오로지 응징만이 있을 뿐’이라는 문장을 연설문에 긴급히 추가했다. 도발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었다.



 백악관이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시점에 행해진 북한의 이러한 자충수는 곧바로 미국의 대북 거부와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이어졌다. 만일 당시 평양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제적으로 로켓 발사를 공론화하고 미국 측 인사들을 참관단으로 초청했다면? 아마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2012년 2월 29일,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특사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베이징에서의 담판을 통해 ‘2·29 합의’를 도출해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활동과 핵실험을 중단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며, 이들 조치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에 동의한다는 게 그 핵심이었다. 미국은 대가로 24만t 상당의 식량을 제공하기로 했다. 극적인 반전, 재선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큰 외교적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합의서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북한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3월 16일 로켓 발사 계획을 공표하고 4월 13일 전격적으로 은하3호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 발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미국이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차라리 애초부터 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최악의 행동이었다.



 남북 관계에서도 북한식 ‘머피의 법칙’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2013년 2월 12일의 3차 핵실험이 대표적이다. ‘신뢰정치’를 통해 북한과 화해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평양이 보낸 취임 선물로는 실로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그림은 1년 뒤 또 반복됐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로 대북 인도주의 지원과 인프라 구축, 이질성 극복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지만, 돌아온 것은 모욕적 언술과 비판뿐이었다. 연초부터 달궈진 ‘통일 대박론’은 찬물을 뒤집어썼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강도가 예전보다 강했다거나 우리 측의 메시지 전달방식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도, 그러한 반응은 불가사의하다. 이쯤 되면 스스로 모든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어 안 풀리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머피 법칙적 습관’이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체질화된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왜 평양은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까. ‘머피의 법칙’은 우연에 기초하는 것 같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로 북한식 일방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들 특유의 믿음이다. 이를테면 주체사상이 가져온 폐해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의 한계에서 오는 패착도 엿보인다.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할 수 있는 정보력이 있었다면 그러한 악수를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사적 긴장을 먹고사는 북한 기득권 집단이 의도적으로 판을 깨려 했을 개연성도 있고, 전형적인 ‘주목 끌기 전술’을 앞뒤 재지 못하고 구사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최근 수년간 북한의 이러한 선택은 최악의 상황 전개를 초래해 왔다. ‘머피적 관성’에서 벗어나 판세를 정확히 읽지 못한다면 그 미래 역시 다를 리 없을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가 공언해온 ‘세계적 추세’의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문제는 그들의 패착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재앙이라는 사실이다. 가속화되는 핵 능력 확장에 볼모로 사로잡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추가 시험 발사를 예고한 현재 상황은 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세월’호 비극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고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는 이 시점에 북한이 또다시 ‘머피 법칙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도 북이 파국적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의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평양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가학적으로 즐기는 자세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레바퀴는 지금 우리 머리 위로 구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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