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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용 가화를 생활속으로

증조부 때부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브루노 르제롱
백화요란의 계절인 이 봄에 박물관에 가야 구경할 수 있는 꽃도 있다.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름다운 궁중채화전’(4월 8일~5월 25일)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장 황수로(79) 장인이 비단으로 만든 꽃나무들이 조선의 봄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궁중채화(宮中綵花)’란 궁중의 잔치를 장식하기 위해 화려하게 만든 가화(假花)를 말한다. 황 장인은 이번 전시에서 순조 기축년(1829) 진찬의 꽃 장식과 음식을 의궤대로 재현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비단꽃 이야기

이 전시장 한쪽에는 1880년부터 귀부인들의 모자와 의복을 장식하는 비단꽃을 제작해온 프랑스 파리의 공방 ‘아틀리에 르제롱’의 일부가 옮겨져 있다.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웅가로, 지미추 등 명품 브랜드의 코르사주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공방인 만큼 오트쿠튀르 패션쇼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꽃 장식들이 벽면을 메우고, 테이블과 선반에는 전통의 작업 도구와 4대째 전해 내려온다는 매뉴얼 스크랩이 빼곡하다.

야외에 전시하면 나비와 벌이 날아들 정도로 자연에 가까운 우리의 꽃나무 조형과 패션소품으로 이용되는 과장되고 변형된 프랑스의 코르사주를 굳이 하나의 전시로 묶은 이유는 뭘까. 전시를 기획한 황 장인의 아들 최성우(54)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은 “미래를 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황 장인에게서 전통채화공예를 전수하고 있는 15명 연구원 전원이 무형문화재가 될 수 없는 이상, 전통을 현대화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안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전통 공예의 앞날을 걱정하던 황 장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해외 사례를 물색해 왔고, 최 이사장이 3년 전 직접 파리로 아틀리에 르제롱을 찾아나선 이래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장인 브루노 르제롱(Bruno Légeron·57)도 지난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황 장인의 기념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4일 북촌 아름지기 한옥에서 열린 아틀리에 르 제롱의 시연회 장면들
브루노는 8일과 10일 국립고궁박물관과 부산문화회관에서 가진 황 장인과의 공동 시연회에 이어 14일 북촌 아름지기 한옥에서 단독으로 시연회를 열고 1시간 동안 자줏빛 카멜리아와 핑크빛 장미를 한 송이씩 만들어 보였다. 한국의 궁중채화 제작과정을 이번에 처음 봤다는 그는 “꽃잎을 일일이 손으로 자르는 한국에 비해 우리는 금속틀을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두 나라의 방식이 매우 흡사해 놀랐다”고 했다.

황 장인이 선물한 작은 꽃가지를 브로치 삼아 앞치마에 달고 등장한 브루노는 “스물두 살 때부터 35년간 비단 꽃을 만들어 왔다”며 이어 40년간 숙련된 장인 미슐린을 소개했다. 원재료가 되는 비단 등의 천에 젤라틴과 물을 먹여 단단하게 만들고 꽃잎을 찍어내는 과정을 브루노가, 한 송이 꽃으로 조립해 완성하는 것은 미슐린이 담당한다.

먼저 카멜리아. 짙은 자줏빛으로 염색한 천을 미리 잘라놓은 납작한 꽃잎을 작은 쿠션 위에 놓고 다양한 크기의 인두를 달궈 굴리면서 한 장씩 손으로 주물러가며 꽃잎의 ‘표정’을 만든다. 꽃의 중심부 봉오리 부분은 볼륨을 강하게 주고, 바깥으로 갈수록 활짝 피도록 정교하게 힘 조절을 달리해야 한다. 꽃잎이 다 완성되면 놋쇠 와이어에 녹색 천을 감아 만든 줄기에 한 장씩 붙이고 실로 감아 나간다. 적당히 마른 뒤 브로치핀을 붙이고 줄기를 구부려 잘라내니 참가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카멜리아 코르사주 한 송이는 약 38만원에 판매된다. 장미꽃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지만, 단정한 형태의 동백꽃보다 자유롭게 흐드러진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줄인두를 보다 정교히 이용해 꽃잎 한 장에 다양한 표정을 주는 것이 달랐다.

브루노에 의하면 유럽에서 조화의 역사는 중세시대부터 시작됐지만, 융성한 것은 18세기 말 마리 앙트와네트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라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채화공예가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것처럼 프랑스도 사정이 썩 좋지는 않다. 한때 100곳이 넘던 조화 공방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자동차가 나오면서부터. “귀부인들이 큰 모자를 쓰고 자동차를 타기 힘들어 모자 사이즈가 작아지니 코르사주 수요도 줄게 됐죠. 지금은 딱 3개 공방이 남았는데 그나마 2곳은 최근 샤넬에 흡수되고 우리만 독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때는 공방에 장인 40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8명이 전부죠.”

그럼에도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전통도구와 방식을 이용한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자연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대상으로 창작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특정 대상을 위해 같은 모양을 대량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없어요. 정확한 용도를 가진 주문에 의해 모든 디자인을 새롭게 하기 때문이죠. 한 번도 똑같은 모델을 만든 적은 없습니다.” 명품브랜드 디자이너들이 스케치를 들고 찾아와 협업을 요청하고 그에 따라 제작에 들어가므로 같은 디자인을 만들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도구와 기법은 바꾸지 않지만 다양한 소재로 무한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며 가죽 소재로 만든 카멜리아를 내밀어 보였다. “라텍스건 가죽이건 다 가져오세요. 어떤 소재로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아틀리에 르제롱은 패션 소품을 넘어 연극, 영화 소품이나 결혼식, 명품 브랜드 매장 디스플레이용으로도 폭넓게 주문을 받고 있다. 에르메스는 정기적으로 새로 출시하는 스카프를 가져와 디스플레이를 위한 꽃 제작을 의뢰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가수 믹 재거의 부인이 직접 찾아와 공연의상을 의뢰해 갔다고. 앞으로 외국 패션브랜드와의 협업도 계획하고 있단다.

최성우 이사장은 “우리 채화는 뮤지엄 피스지만 프랑스의 채화는 생활소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궤를 보면 ‘잠화’라고 해서 왕실 잔치에 참석한 국왕 이하 제신들이 모두 머리에 꽃을 꽂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인 것이죠. 무형문화재로서 왕실공예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생활문화가 함께 회복돼야 장인들이 생활을 유지하면서 전통도 잘 보전해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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