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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 남편 중독

봄맞이 집안 청소를 하느라 분주한 아내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스마트폰 중독이구나. 나? 나 중독 아니야. 아내는 웃는다. 원래 스스로 중독이라고 인정하기가 어렵죠. 당신 중독이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해?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어요?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계속 찾고 전전긍긍하잖아? 불쾌하고 불안하고 어지럽고 입이 바싹 마르고 숨이 차고 그렇지? 금단현상이 바로 중독의 증거죠. 무슨 생사람 잡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이것저것 확인할 게 있으니까 그런 거지.

흥분하지 말자. 남편은 호흡을 가다듬는다. 여보, 중독은 그런 것이 아니야. 아무리 당신이 단정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거기에는 윤리의 문제가 있다니까. 윤리의 문제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중독이라고.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중독이라고. 단지 매일 술을 마신다고 해서, 술이 없으면 금단증세에 시달린다고 해서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지 않아. 그건 그냥 술을 열심히 마시는 거에 불과하다고. 누가 그래요? 안다 형이. 당신도 알지? 다 안다는 안다 형. 그 안다 형이 그랬단 말이야. 아무튼 난 부끄럽지 않아! 아내가 웃는다. 말을 말아야죠.

비스듬히 소파에 누우며 남편은 전에 배 대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배 대리는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서 사회를 보던 개그맨 신동엽씨로부터 배우 조형기씨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지금은 금연에 성공했지만 조씨는 평생 1만 갑 이상의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만갑’이란 호가 있을 정도의 애연가다. 그는 아침에 눈 뜨면 담배부터 입에 물고 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조씨는 연기도 잘하지만 각종 토크쇼에서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입담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발군인데 그건 아마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샅샅이 읽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날 신문을 보고 그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수십 년째 애독하는 신문에 금연 특집 기사가 실린 것이다. 여러 면에 걸쳐 기자와 전문가, 유명 의사들이 흡연이 얼마나 끔직한 행위인지 각종 수치와 그래프, 사례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기사를 읽을 때 그는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대체 그동안 나는 내 몸에 얼마나 몹쓸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침내 다음날 아침 그는 끊어버린다. 20년째 구독한 신문을 말이다.

그런 조형기씨도 남편이 볼 때 중독자는 아니다. 그저 한때 흡연을 성실하게 한 사람에 불과할 뿐. 그러니 남편 역시 술을 열심히 마시고 독서를 좋아하고 커피를 자주 마시고 스마트폰을 부지런히 만지작거리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남편은 중독자가 아니다.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남편은 베란다에서 정리하고 있는 아내에게 말한다. 그러는 당신은 뭐 중독 없어? 난 없지. 화분 분갈이를 하던 아내가 일손을 멈추고 남편을 보며 말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중독이 하나 있네. 뭔데? 난 당신한테 중독된 것 같아. 정말? 내가 그렇게 좋아? 나한테 아주 빠지셨군. 아내가 웃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하고 사는 내가 자꾸 부끄러운 것 같아서.


※독자 여러분의 보다 풍요로운 일요일 아침을 위하여 ‘패러디 파라다이스’와 ‘인생은 즐거워’를 교대로 싣습니다. 더욱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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