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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보수 축소만으론 사고 방지 한계 … 내부 감시 작동해야

# 고래는 증권가에선 ‘큰손’을 가리키는 은어다. 브루노 익실 JP모건 런던지점 트레이더가 ‘런던 고래’로 불린 건 그래서였다. 그는 3600억 달러의 자금을 주물렀다. 거액 집중 투자로 유명했다. 2011년 말 1000억 달러를 회사채 신용부도스와프(CDS)에 쏟아부었다. ‘기업 신용도가 개선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엇나갔다. JP모건이 본 손실은 무려 62억 달러(약 6조4400억원). 시장은 “거액의 보너스를 노린 트레이더의 탐욕이 빚은 참극”이라고 해석했다. 투자 수익에 따라 많게는 수백억원대의 성과급을 주는 투자은행(IB)의 성과보수 체계가 사고의 진원지란 얘기다.

잇단 금융사고에 성과보수 체계 수술 나선 금융업계

# 지난해 9월 터진 동양그룹 사태는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동양증권은 투자부적격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개인투자자들에게 떠넘겼다. 많은 고객이 “채권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이런 불완전 판매가 조직적으로 이뤄졌을까. 동양증권 전직 영업사원 A씨(31)는 “직원별 할당 때문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열사 채권을 팔았다”고 말한다. 직원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계열사 채권 실적이 있어야 했다는 얘기다.

국내외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리·환율 조작부터 투기성 거래에 불법 대출, 횡령에 개인정보 유출까지…. 금융사고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사고의 내용은 달라도 배경은 하나다. 과도한 욕심으로 원칙을 어기고 투자·영업 활동을 벌였다는 것. 금융회사들은 등 돌린 소비자를 돌려세우기 위해 변신을 외치고 있다. 성과보수 체계를 바꾸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英·美 은행, 성과급 체계 대대적 개편
변신을 약속한 금융회사는 영국에 가장 많다. 이유가 있다. 사고를 그만큼 많이 쳤다. 계열사 이익을 위해 은행 간 금리를 거짓 보고해 온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사건, 외환 트레이더들이 매매 시간을 조정해 환율을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건뿐만이 아니다. 이에 앞선 2011년 대형 소비자 기만 사건이 들통났다. 영국 은행들이 수년간 지급보장보험(PPI)을 불완전 판매해 온 것이 금융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PPI는 계약자가 사고를 당하거나 아플 때, 또는 실직했을 때 개인 대출을 대신 갚아주는 보험 상품. 하지만 은행들은 보험급여 청구권이 없는 자영업자나 실직자에게도 상품을 팔았다. 바클레이스·HSBC 등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160억 파운드(약 27조9000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물었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많은 금융사 직원이 매출 목표를 달성해 성과급을 받기 위해 고객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 상품을 팔았다”고 밝혔다.

영국 주요 은행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잇따른 사고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대대적으로 성과보수 체계를 손봤다. 영국 최대 은행 바클레이스는 “판매 실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보수 체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눈앞의 이익을 좇기 위해 소비자에게 잘못된 금융상품을 파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HSBC는 지난해 아예 영업점의 판매 목표를 없앴다. “고객 만족도와 판매 품질만을 성과급 산정에 반영하겠다”고 내걸었다. RBS(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로이드은행그룹은 고객 피드백을 성과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나섰다.

성과보수 체계를 손보는 건 미국계 은행도 마찬가지다. 골드먼삭스·JP모건·모건스탠리 등 미국 주요 투자은행들은 지난해 수익이 늘었음에도 직원의 총급여를 3~4% 삭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투자은행들은 탐욕의 화신이란 낙인을 벗지 못했다. 신용 낮은 이들에게 마구잡이 대출을 내주다 발생한 사고가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이후로도 2008년 말 터진 650억 달러 규모의 금융 피라미드 사기, 2012년 런던 고래 사건에 이어 지난해 6월엔 1억6000만 개의 카드 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사고가 터졌다.

보너스 상한선 규제가 대표적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성과급을 현금 대신 주식으로 여러 차례 나눠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JP모건도 잇따른 금융사고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의 연봉을 37% 삭감해 여론에 발맞췄다. 오영선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단기 성과를 내고 거액의 보너스를 챙겨 떠나는 ‘먹튀형 임원’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미국과 유럽 금융당국도 금융권 임직원 성과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솜방망이 처벌, 느슨한 분위기 문제
일부 국내 은행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불법 대출과 직원 횡령 등 잇따른 금융사고로 홍역을 치른 국민은행은 올 초 “직원들이 고객의 입장에서 자율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끔 하겠다”며 성과 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VI(Value Up Index)로 교체했다. 박영태 국민은행 상무는 “직원 평가에서 실적주의를 갑자기 철폐하긴 어렵다. 세세한 기준으로 직원 실적을 관리하던 것을 조금 큰 틀로 풀어주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과보수 체계만 바꾼다고 금융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내 금융사의 경우 성과급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성과급을 노린 금융 사고는 주로 투자 과실과 불완전 판매 등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내부 통제 시스템이나 금융사고에 대한 징벌 체계 등이 총체적으로 느슨한 게 문제로 지적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지주사에 낙하산 회장이 내려오면 이들이 자기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 멤버를 물갈이하면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밀려나곤 한다”며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면 조직의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이 해이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금융사고에 대한 처벌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가볍다는 주장도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상품 불완전판매에 대해 수십조원대의 벌금을 물리는 미국 금융당국과 달리 국내에선 단기간 영업정지 등으로 금융회사에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자율권을 주되 문제가 발생하면 기관장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는 게 외국식 감독 체계라면 우리는 자율권도 주지 않고 사고가 나도 책임도 거의 묻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법적 위험을 관리하는 준법감시인과 운영 리스크를 담당하는 위험관리매니저, 사후적 경영감시를 수행하는 감사를 축으로 내부 통제의 틀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장한다. 그는 “일부 은행에선 준법감시인의 역할과 권한이 불명확하고 임기도 짧아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금융사고 예방대책을 마련해 준법감시인과 감사, 위험관리매니저가 이행 여부를 철저히 체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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